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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치매’는 혐오와 차별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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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치매’는 혐오와 차별의 이름이다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6.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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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병(病)을 핑계로 벌이나 비난을 면해보려는 이들에 대한 요즘 얘기, ‘전두환은 알츠하이머, 오거돈은 치매라니 이 둘은 같은가 다른가?’하는 핀잔 섞인 질문이다. 물론 이 차이는 본인들의 선택을 언론이 따라 적은 것이다.

이 경우 알츠하이머는 치매가 일반적으로 멸시의 뜻을 품고 있음을 감안해 고른 병명이겠다.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도 있지만, 언행(言行)과 생각이 어리숙한 이를 보고 ‘저 친구 치매 아니야’하는 것처럼 쓰기도 한다. 노망(老妄)과 비슷한, 욕설 같은 활용인 것이다.

사전은 치매(癡呆)를 ‘의학용어로 대뇌 신경 세포의 손상 따위로 말미암아 지능, 의지, 기억 따위가 지속적이고 본질적으로 상실되는 병. 주로 노인에게 나타난다’고 풀었다. 가치평가상 중립적 해석이다. 그러나 실제 쓰임새는 차이가 있다. ‘배려 없는, 무정한 말’인 것이다.

한자 단어 癡와 呆가 연결된 한자어 숙어(熟語)다. 癡는 미치광이라는 뜻 포함된 어리석음, 呆 또한 어리석음의 뜻이니 이는 설명하기 부적절한 정도의 저주와 혐오, 차별의 언어다. 원래의 뜻인 것이다. 더구나 어른(노인)과 밀접히 연관되니, 생각만으로도 죄송하다.

서양의학의 dementia(디멘시아)라는 병이 동아시아에 소개되면서 처음에 ‘치매’로 번역한 것으로 본다. 그 병의 증상이 원래의 뜻과 비슷하니 일리(一理) 있다고 하겠지만, 원래의 저주스런 뜻 때문에 꺼리고 피하는, 기휘(忌諱)의 병명이 된 것이다.

라틴어에서 온 디멘시아는 분리 제거 등을 뜻하는 ‘de-’나 마음이나 정신의 뜻 mental(멘탈)의 합체로 ‘정신이 없어진 상태’로 풀 수 있다. 인지기능의 부재(不在)나 장애인 것이다. ‘다시 아기가 되는 병’이라고 어떤 자료는 설명한다.

인간의 긍지를, 약자의 자존을 해치지 않는 착한 말로 볼 수 있다. 인격이나 지성을 잃은 것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임을 분명히 한 말이다. 개인의 잘못이나 주변 도움의 부적절함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인식 때문에 치매 대신 중국은 실지증(失智症), 일본은 인지증(認知症) 인지저하증 등으로 진즉에 바꿔 부른다. 우리는 여태 (욕설 같은) 이 병명 ‘치매’를 쓴다. 생활과 교육에서 한자가 사라진 까닭에 그 말이 품고 있는 속뜻의 치명성(致命性)을 짐작 못한 결과로 여겨진다.

일본인 히구치 나오미 씨가 쓴 ‘오작동하는 뇌’의 번역본이 마련되고 있다고 한다. ‘치매’와 관련된 편견에 맞서 살아온 인지증 환자 본인의 진솔한 저술이라는 점에서 주목 받는다.

모두(冒頭)의 질문에 대한 답변, 디멘시아(인지저하증)에는 알츠하이머 등 몇 종류가 있다. 알츠하이머가 절반가량이고, 레비소체가 20%, 혈관성치매가 15% 정도라고 한다. ‘치매=알츠하이머’라는 등식은 오해다. 이 책에 나온다.

그녀는 또 의사와 같은 전문가들이 글을 쓰거나 공개적으로 말할 때, 환자와 가족도 그 견해를 보고 듣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줄 것을 당부했다. 자칫 어려운 상황의 사람들에게 그 말이 흉기처럼 아픔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병의 이름이 환자나 가족을 더 좌절하게 하는 나쁜 상황이다. 의학계와 언어당국인 국립국어원의 개안(開眼)이 절실하다. 정치도 나서야 한다. 내일(하제)을 위한 착한 일이니.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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