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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동네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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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동네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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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0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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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나의 지인 중에 도예공장을 하는 방 사장이 계시다. 굳이 인물평을 한다면 내 키가 1m70㎝인데도 머리를 뒤로 젖혀야 그의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할 수 있다. 그 높이에 달린 눈 또한 와이셔츠 단추 구멍이나 한다는 내 눈의 세 배나 됨직하다. 그 눈이 잠시라도 가만있지 않고 이글거리는 것이 완전히 무인(武人)상이다.

왜 이렇게 서두에 인물평을 하느냐 하면 신체의 모든 것이 나의 세 배에서부터 반(半)배까지 큰 육체의 소유자가 앙증맞기 그지없는 찻잔이나 공기그릇 같은 것들을 만들기 때문이다. 모양도 가지각색 천차만별이라 어떤 것은 내 마음대로 고려청자나 이조백자에 견주어 보기도 했다. 방 사장은 굳이 상품가치로 밖에 따질 수 없는 물건이라지만 겸손의 말로 들었다. 나의 무지에 가까운 예술적인 안목으로 곡선으로 된 제품은 예술품이고 직선으로 된 제품은 상품으로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방 사장은 폭넓게 행동하는 사람이라 언변도 좋을 것이라 어디 나가서 내 물건 자랑으로 예술품이라고 떠 벌려도 좋으련만 도통 자기 물건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못 들었다. 방 사장의 공장도 IMF때 자금난으로 도산 위기에까지 몰렸다. 없는 돈에 절대 절명의 순간이라 제때 끼니도 챙기지도 못하고 자가용도 굴릴 형편이 못 되어서 버스를 타고 다녔다.

어느 날 방 사장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힐끗 보더니 잠시 후에는 아예 위아래를 눈으로 훑더란다. 한마디라도 간섭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표정이더니만 이윽고 참지를 못하고 무슨 일 하냐고 묻는 것을 대꾸도 안 하자, 재차 묻는 통에 신경질이 나서 이쑤시개 공장한다고 말하며 돌아앉았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방 사장만큼이나 눈을 크게 뜨고 정말이냐며 직원이 몇이며 얼마나 버냐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묻더란다.

사람 한 명 두고 집사람하고 합이 셋이서 각자 한 달 월급 정도나 번다고 말해 줬단다. 그 말이 정말이냐며 돌아앉은 방 사장의 팔을 잡아채며 묻더란다. 눈 큰 사람이 겁이 많다는 말이 있지만 성질 또한 불같은지라 욱 하면서도 세상 참 좋아졌구나 하며 참았단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간첩식별법 중에 모르는 사람이 쏟는 이유 없는 관심도 간첩으로 신고대상에 들어갔다. 신고만 하면 끌어다가 간첩을 만들 수도 있었던 시절이라 포상금도 받을 수 있으련만 지금은 개성에 공장을 만드는 시대라 간첩이라고 신고해 봐야 시대에 부응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을 것 같아 참았단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눈치 모자라기 짝이 없는 옆자리의 손님은 한 술 더 떠 시간 있으면 내려서 술이나 한잔 나눌 수 있냐고 말하는 데서는 기가 차더란다.

방사장이 어이가 없어서 정신 빠진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의심도 생겨서 대체 나한테 뭘 얻기 위해 그러냐고 짜증을 내니 그제야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말하더란다. 자기는 종업원 댓 명 둔 화투공장 사장이라고 여태까지 공장을 운영해 오며 주위친지나 친우들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얘기를 안했단다. 그런데 오늘 화투보다도 더한 이쑤시개를 만드는 공장사장도 떳떳이 말하는 것을 듣고 용기를 얻었단다. 이제는 떳떳하게 말하고 행동하겠다고 말하더란다.

그러며 자기가 만드는 물건이 돈벌이는 된다고 말하는데 서양 녀석들이 화투를 모른 탓으로 수출이 안 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내수만 바라보는데도 공휴일 빼고는 기계 세우는 날이 없었단다. 단기 소모품이라 항시 물건이 달린다고 했다. 어쩌다 재활용되는 곳이라고는 가뭄에 콩 나듯이 동네 노인정밖에 없으니 확실한 사업이라 말했다. 재고가 쌓이니 썩을 걱정을 하나 파손될 걱정도 없고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라 했다. 사장님도 이쑤시개 공장 안 되면 자기네 공장으로 오라고 말하더란다. 나에게 자신감과 떳떳함을 일깨워 준 사장님에게 고맙다며 이제는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자신 있게 말하겠다고 말하더란다.

동화속에 보면 세상에서 제일 약하다고 스스로 비관하던 토끼들이 개울가로 자살하러 가서 물속으로 뛰어드는 개구리를 보고는 우리보다 더 약한 동물도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돌렸다는 얘기가 있다. 내가 나서기 이전에 나도 모르게 누군가가 나를 보고 희망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의 초라함이 한결 위안이 되었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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