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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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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기다림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7.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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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오장(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기다림
     - 오정숙 作

하얀 목련 겹겹이 그 품을 열면
당신을 기다리는 마음도 열립니다
하나 둘, 꽃잎이
흙빛으로 바닥에 눕고
기다리는 마음도 흙빛입니다

노을이 내리고
스쳐가는 바람도 빈손이지만
고백하지 못한 사연
가슴 한켠에 묻어둔 채

추억보다 더 설레는 기다림으로
봄을 껴안아 봅니다

눈부시게 하얀 봄이 스러져도
기다림이 지치지 않는 것은
또다시 봄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시인 이오장 시평]

이른 봄날, 초가지붕 섬돌 위에 가지런하게 놓인 하얀 고무신은 언제나 거꾸로였다.
 
사립문 울타리 위로 솟아나 활짝 꽃문을 열어젖힌 목련은 봄의 꽃등, 봄이면 돌아온다고 황아짐을 지고 떠난 낭군은 다시 꽃등이 밝았는데 돌아올 줄 모른다. 

언제나 맞이하려고 신을 거꾸로 벗어놓는 아낙은 길쌈과 바느질로 긴 겨울을 보내고 눈 녹는 것을 바라보다 다시 맞는 봄을 온몸으로 안는다. 

그 세월이 벌써 수삼 년, 객지에 나가 화를 당하지나 않았는지.
아니면 좋은 일에 빠져 집을 잊어버렸는지 밤에도 꺼질 줄 모르는 호롱불은 바느질하는 긴 소맷자락 춤사위를 봉창 가득히 그려놓았다. 

언제 끝날 기다림인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가. 

목련을 어김없이 피어나 가슴을 조여 오는데 낭군은 긴 그림자를 마음속에만 남겨놓는다. 

목련은 기다림의 꽃이다. 
님을 그리다가 목이 북쪽으로 치켜들어 활짝 핀 모습이 궁궐을 향했다 하여 충절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생태적으로는 남쪽의 햇빛을 많이 받은 꽃받침이 길게 치켜들어 꽃잎이 북쪽을 향한 것이지만 그거야 어찌됐든 님을 그리는 충절의 꽃이다. 

오정숙 시인은 목련을 닮은 기다림의 시인이 틀림없다. 
목련의 하얀 꽃잎이 열리면 시인의 가슴도 열리고 꽃잎이 하나둘 떨어지면 시인의 가슴도 떨어져 흙빛이 된다. 

그러나 그 사랑을 고백하지 못했다. 
노을이 내리고 하얀 꽃그림자가 어둠에 싸여도 사연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용기가 없다. 
가슴 한쪽에 고이고이 묻어두고 다시 봄을 기다린다. 
사랑의 추억이 가득 찬 가슴을 목련꽃에 맞춰두고 봄을 껴안을 뿐, 섬돌 아래 신발을 거꾸로 놓아둔 채 밤늦게까지 문도 닫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지치지 않는다. 
또다시 올 봄을 기다린다.

[전국매일신문 詩] 시인 이오장(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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