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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68] ‘그런다고 살림살이가 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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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68] ‘그런다고 살림살이가 펴질까’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1.08.04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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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날 선 말의 사나움이 낯설지 않다. 절제되지 않는 감정의 찌꺼기만 찐득하게 묻어난다. 어디서 오는 기시감(旣視感)일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격앙된 얼굴이 떠오른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 협상이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향한 국민의당 주요 당직자들의 막말이 험악해지고 있다.

안철수 대표의 합당 관련 '시한부 응답'을 압박하고 나선 이 대표에 대해 ‘철부지 애송이’라거나 ‘꿀 먹은 벙어리’ 등 폭언에 가까운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우리는 한편으로 여론을 조작해 정권을 도둑질한 도둑놈들과 싸우고 다른 한편으로 국운이 걸린 정권교체를 앞에 두고 제 분수를 모르고 제멋대로 장난질하는 철부지 애송이도 제압해야 한다.”

날 선 말의 사나움이 낯설지 않다. 절제되지 않는 감정의 찌꺼기만 찐득하게 묻어난다. 어디서 오는 기시감(旣視感)일까. 그렇다. 북한이다. TV 프로그램 ‘남북의 창’에서 본 북한 방송국의 여자 아나운서나 또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격앙된 얼굴이 떠오른다.

김 부부장이 지난 3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의 ‘서해 수호의 날’ 기념사 발언 등에 대해 ‘미국산 앵무새라’라거나 ‘뻔뻔스러움의 극치’라는 용어를 써가며 문 대통령과 정부를 거칠게 비난하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김 부부장도 멋쩍게 웃고 갈 일이지만 ‘여론을 조작해 정권을 도둑질한 도둑놈들’과 ‘제 분수도 모르고 제멋대로 장난질하는 철부지 애송이’는 문 대통령이나 남한 정부를 향한 북한 당국자들의 비난이 아니다.

국민의당 김윤 서울시당위원장이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도둑놈들’은 일명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관련 정부·여당을 말하고, ‘철부지 애송이’는 이준석 대표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의 정당한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을 ‘도둑놈’이라고 비난한데 이어 ‘힘을 합쳐 정권교체를 이루자’며 합당 협상을 하고 있는 상대 당 대표를 ‘철부지 애송이’로 깎아내리며 ‘제압해야 할 적’으로 규정해 버렸다.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적개심에 불타는 전장의 언어다. 섬뜩한 증오와 살벌함이 무섭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협상) 시한을 다음 주로 못박겠다”는 이 대표에게 “어디서 협박질인가”라며 날 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구혁모 국민의당 최고위원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이 대표를 겨냥해 “(안 대표가) 드루킹 몸통 찾는 걸 계속 ‘함께 하자’고 하는데 같이 할 것인가”라며 “질문에 회피 안 한다고 자화자찬 하시던 분이 왜 드루킹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나”라고 비판했다.

물론 국민의당으로서는 존재감의 과시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합당 과정에서 거대한 국민의힘에 흡수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쎄게’나갈 필요가 있다. 합당통합이 아니라 자칫 흡수통합이 되어 한 푼의 지분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운명은 피해야 한다.

국민의당 이규태 사무총장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 “우리가 사실 현재 당세로 봐서 돈과 조직이 없지 ‘가오’까지 없는 정당은 아니다. 이거를 훼손하면 안된다.”고 했던 것은 솔직한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하지만 감정의 과잉노출이나 액션의 오버는 자신의 초라한 패를 보여주는 꼴에 다름 아니다. 그럴수록 기는 자의 패착만 짙어갈 뿐이다.

더구나 통합상대인 국민의힘은 예전의 국민의힘이 아니다. 탄핵정국의 소멸해가던 당이 아니다. 힘이 부족할 때야 손 하나라도 더 필요했으나 지금은 대권 여론조사 1위 후보가 존재하는, 집권 여당이 눈앞에 보이는 정당이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국민의당이 예전처럼 절실하지 않다는 뜻이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도 사납고 거친 말이 귀에는 구심력이 되겠지만 마음은 더 멀리 달아나는 원심력이 될 뿐이다.

국민의당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것은 막말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증오의 막말 잔치로 폭망했던 것이 그리 오래전의 일도 아니다. 막말은 상대방을 베는 칼이 아니라 자신을 해치는 부메랑의 칼일 뿐이다.

국민의당의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기이다. 새로운 전략은 따로 있지 않다. 초심이다. 어려울수록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방황하는 정당에게 주는 희망의 말이다. 이순신 장군은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신에게는 아직 열 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 사무총장의 말처럼 비록 돈도 조직도 없는 초라한 정당이지만 열 두 척의 배는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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