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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42] 국민의 찌든 마음을 씻겨주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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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42] 국민의 찌든 마음을 씻겨주는 정치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1.08.11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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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우 시인(1951년생)
대전 출신으로 직업은 보일러공, 중졸 학력으로 마흔이 넘어서야 시를 쓰기 시작, ‘저 석양’을 펴내면서 문단에 나옴.

< 함께 읽기> 이 시인의 시에는 자신만의 삶의 경험이 녹아있다. 그러면서도 단지 고통과 소외만을 드러내지는 않는, 따뜻함과 반성과 희망이 담겨 있다.

이 시에는 두 개의 저녁이 나온다. ‘용서를 청해야 할 저녁’과 ‘어떤 고백을 해야 할 저녁’, 이 둘은 다른 듯하면서도 닮았다. 첫 마디를 쉽게 꺼낼수 없다는 점에서. “맑은 물 한 대야 그 발 밑에 놓아 / 무릎 꿇고 누군가의 발을 씻겨 줘야 할 저녁이 있다”

가톨릭에서는 부활절을 앞둔 성(聖)목요일에 사제는 신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례(洗足禮)를 거행한다. 그때 ‘발을 씻긴다는 건 자신을 낮은 자세로 내려놓고 겸손을 실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시는 그런 뜻보다는 내가 용서를 청해야 할 대상에게 바치는 속죄의 행위로 보는 게 나을 듯싶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질러 용서를 청하고 싶을 때가 있을게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얄팍한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고, 시기를 놓쳐서도 그렇고, 용서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고...

“나지막이, 무언가 고백해야 할 어떤 저녁이 있다” 고백의 내용은 다양하다. 용서와 연관 지어 잘못을 고백함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속내를 드러내는 고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이런 걸 잘못이라 할수 있을까, 비록 잘못일지라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 있겠어? 등 이렇게 용서받아야 할 내용들을 희석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 저녁이 다 가도록 / 나는 첫 한마디를 시작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 발을 차고 맑은 물로 씻어주지 못했다” 어떤 경우든 꺼내기 힘든 건 첫 마디다. ‘나 사실 너에게 이런 잘못을 저질렀어. ’나 사실 너를 좋아해’ 그 첫 한 마디를 시작하지 못해 머뭇거리다 또 하루를 보내버린다. 그 첫 한 마디를 꺼내지 못하고 망설이다 보내버린 숱한 고백의 그림자들. 나의 조금 아픈 곳은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남에게 저지른 엄청난 잘못은 지우려 했으니, 오늘 저녁이 지나기 전에 용서를 빌어야 하겠다. 그 저녁은 두 번 다시 오지 않기에 오늘 저녁이 바로 그 저녁이길... 차고 맑은 물을 발밑에 준비하고, 무릎 꿇고 코로나로 찌든 국민의 마음을 씻겨 주는 정치가 그립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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