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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독립군 영웅’ 홍범도 장군 조국의 품에서 영면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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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독립군 영웅’ 홍범도 장군 조국의 품에서 영면하길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1.08.19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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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광복이 된 지 어느새 76년이나 흘렀지만 광복절이 던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78년만에 돌아온 우리 민족의 영웅 중 한 분인 여천(汝千) 홍범도(洪範圖) 장군이 그토록 보고 싶던 광복 76년 만에 돌아온 장군을 대하면서 온갖 만감이 교차했다. 제76주년 광복절인 2021년 8월 15일 먼 이국땅인 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 장군은 유해가 되어 귀국했다.

일제 강점기에서 굴하지않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다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한채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생을 마감한 홍범도 장군(1868~1943). 장군이 돌아왔다. 카자흐스탄에서 영면에 들어간 지 78년만에, 1908년 함경도 북청에서 항일 전투를 마지막으로 고국을 떠난지 110여년여 만이다.

홍 장군은 강원도에서 포수를 하며 평범하게 살았지만 일제가 한국인들에게 무기를 지니지 못하게 단속하면서 의병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일본군 관사와 순사주재소를 공격하고, 일본인 금광을 습격해 금괴를 빼앗아 군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하늘을 나는 홍범도’라 불리기도 했다.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해 1920년 6월 만주지역에 있는 봉오동에서 독립군을 이끌고 일본군을 대파하고, 청산리 전투에도 참가했다. 독립운동을 위해 소련군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보내게 된다.

홍 장군은 독립운동의 영웅이었지만 남북한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남한은 그가 공산당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북한은 홍 장군의 뛰어난 항일행적이 김일성의 항일과 비교될 것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폄하했다.

그는 항일운동 일선에 있었지만 머슴 출신이라는 이유로 주류에서 밀리고, 말년에는 오갈 데 없이 고려인 극장에서 경비를 서거나 표를 파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다 세상을 떠났다.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해외에서 유해봉환이 이뤄진 독립유공자는 143분이다.

아직까지 국외 지역에 안장돼 돌아오지 못한 독립유공자 묘소는 159기에 달한다. 그러나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고 어느 낯선 이국땅에 묻혀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은 훨씬 많을 것이다. 홍 장군 같은 명성 있는 운동가조차 유해 귀환에 78년이 걸렸다. 우리는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을 누리지만 그들의 고되고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데는 지나치게 인색하다.

홍범도 장군은 1910년 일제 강점이 시작되자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양성에 힘을 쏟는 한편, 함경북도 경원의 일본군 수비대 습격에 이어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400여 명의 독립군 부대를 편성하고 국내로 잠임해 갑산, 혜산, 자성 등에서 일본군을 급습해 전공을 올렸다.

이어 만포진 전투에서 일본군 70여 명을 사살하는 활약을 했다.이에 반격에 나선 일본군 제19사단이 남양수비대와 함께 독립군 본거지인 봉오동을 공격하자 700여 명의 독립군을 지휘해 3일간 일본군 157명을 사살, 독립군 최대의 승리를 거두었다.

홍범도 장군은 같은 해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전투도 승리로 이끄는 전공을 거두었다.남의 나라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며 대한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던 홍범도 장군은 고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43년 76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들과 함께 만주에서 러시아 스랍스케, 이르크츠크를 거쳐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로 강제로 이주하며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을 겪었다.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정부는 8월 16일과 17일, 이틀간 홍범도 장군 추모일로 지정하고 지난 18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과 함께 아직도 차가운 이국땅에서 고국을 그리는 독립운동가의 귀환을 서둘러야 한다.

특히, 한일 강제합병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하얼빈역에서 처단하고 중국의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반드시 찾아내 국내로 모셔야 할 의무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나라가 어렵고 힘들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의 번영과 평화가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상기해야 한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송환은 여러모로 큰 의미를 갖는다. 아직 유해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구국의 영혼들이 타국에서 외롭게 묻혀 있지만 이번 홍범도 장군 유해의 송환으로 차곡차곡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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