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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추말리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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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추말리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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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8.2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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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일 년 중에 부부 싸움을 고추 말릴 때 가장 많이 하는 것 같다. 아내가 이제는 아예 도움도 청하지 않고 고추 자루를 추스른다. 이럴 때는 나도 그저 말 한마디 안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도 혼자 고추 자르는 것이 안 돼 보여 동네 형님네서 고추 자르는 기계를 빌려다 자르기로 했다. 동네 형님이 고추 자르는 기계를 빌려주며 당부를 했다. 사용하고 바로 갖고 오라며, 내 물건 내돌리는 것이 싫다고 말이다.

전기모터로 잘려나간다. 넣기가 바쁠 정도로 고추가 잘려 나가 금세 고추 한 자루를 잘랐다. 아내 말로는 일기예보에서 한 동안 빗방울 내리지 않는다고 보도 됐다면서 고추 말리기에 이러한 해도 다 있다고 좋아 했다. 고추 자르는 것을 데크 너머에서 신기하게 바라보던 교회 목사님이 자기네도 고추가 한 자루인데 잠깐 좀 빌려 쓰면 안 되냐고 아내에게 물어왔다. 아내는 난처한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 것을 내가 조건을 붙였다. 고추를 자르되 기계를 바로 우리 집으로 가져오라고 말했다. 내가 빌려간 기계를 다른 사람이 들고 간다면 형님 성질로 그 기계를 해머로 부숴 버릴 것이 뻔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들에 나가면서 당부 아닌 신신당부를 했다. 형님네 기계를 내가 꼭 갖다 줘야 하니 목사한테 기계를 꼭 받아 놓으라 하자, 잔소리 더럽게 한다며 쏘아댔다. 들에서 일을 하는데 불안한 생각에 일이 안 되어 중간에 집으로 돌아왔더니 우려했던 일이 결국 터졌다. 목사가 고마워서 자기가 갖다 준다고 해서 아내는 바쁜 나를 생각하여 그러라고 했단다.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목사가 간 길을 뒤쫓아 형님네 집을 찾아갔는데 의의로 조용하다.

형님은 말하기를 그깟 고추 한 자루를 여태 자르냐고 하는데, 분명 목사가 기계를 전해 주고도 남을 시간이었음으로 그렇게 말하는 의도를 모르겠다. 한바탕 난리를 친 태풍 뒤의 고요인지 가름 할 수가 없었다. 짐작하건데 아직 기계를 가져오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바빠서 들일하고 집사람 혼자 조심스럽게 자르기 때문에 늦을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지금쯤이면 아마 아내가 고추를 다 잘랐을 것이라 기계를 가져오겠다면서 말을 돌리고 자리를 떴다.

목사 이놈의 인간이 할 일 없으면 기도나 하고 자빠졌지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전화를 걸어도 안 받고 같이 있다는 석현이 녀석도 안 받는다. 마누라는 계속 통화중이고 환장하겠다. 목사의 일행이 우리병원 앞에 있다고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기계 돌려주러 간 사람들이 병원 앞에 있다는 것이 이상했으나 그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빨리 목사의 일행을 쫓아가 잡아야한다. 정미소 쪽에서 보니 교회 차가 우리병원 앞 개울가에 있는 것이 보였다. 개울을 건너기 전에 목사의 무리를 잡아야한다.

나는 자동차의 가속 페달을 밟고 달려가 보니 목사의 무리는 길을 잘못 들어 농로길 비가 고인 웅덩이에 차가 빠져서 견인차를 호출하고 대기 중이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힘이 목사의 차를 물웅덩이로 인도하사 물에 빠트려 꼼짝 못하게 하시고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나는 바로 고추 자르는 기계를 받아 챙겼다.

어느 해 한번 고추 제대로 말려 본적 없어 천금을 주고라라도 올해는 고춧가루를 사라고 윽박질렀더니, 작년에 그 난리를 쳐댔던 적이 있어서 아내는 구구로 고춧가루를 사서 김장을 담갔다. 김치를 먹던 아내가 김치가 이상하단다. 김치를 먹는데 고춧가루가 까칠한 게 고춧가루와 배추가 동화를 못하는 것 같았다. 태양초가 아닌 열에 볶은 고춧가루 같다고 말하는데 김치 또한 물러 버렸다. 아내는 이 절대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춧가루 사서 김치 꼴좋게 됐다. 무른 김치 혼자 다 먹어라”하며 공격을 가했다.

올 초가을에 들어와 보니 들에 나갈 때도 없었던 붉은 고추가 꼭지까지 따져서 널려 있었다. 어느 해인가 내가 고추 꼭지 일찍 땄다고 그 난리를 쳤었는데, 꼭지가 따져 있는 것이 뙤약볕 아래서 속전속결할 모양이다. 마른고추에서 ‘따닥, 따닥’소리가 났다. 속전속결하든 지구전을 하든 이제는 신경 안 쓰기로 했다. 김치만 맛있어라.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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