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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71] “바보야, 본질은 검찰 고발 사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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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71] “바보야, 본질은 검찰 고발 사주잖아”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1.09.15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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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부수적 파생 의혹으로 본질을 덮어보려는 정치공세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진상 규명을 위한 공수처 수사와 검찰의 조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대선정국으로 가는 길에 복병으로 드러난 ‘검찰 고발 사주’ 의혹에 국민의힘이 매우, 아주 잘 대응하고 있다. 지금껏 정치판에서 흔히 보아 왔듯이 의혹의 본질을 흐려 국면 전환을 하는데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도둑놈이나 도둑놈의 행위보다 그런 도둑놈을 신고한 제보자를 헐뜯고 비난하게 만드는 국민의힘의 탁월한 재주는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본질은 검찰의 국기문란이고 이는 의혹의 단계를 넘어 사실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지만 보수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가며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정치공작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찰권의 사유화 의혹이 세상에 알려지자 처음에는 다급한 김에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제보자를 비난했다. 그러자 제보자가 얼굴을 내놓고 증거를 대기 시작하자 윤 총장과 국민의힘은 ‘국가정보원장 정치공작’을 꺼내 들고 있다.

윤석열 캠프는 지난 8월11일 박지원 국정원장과 제보자 조성은씨, 또 한 명의 동석자가 함께 식사를 하며 정치공작을 모의했다며 이들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고발했다. 며칠 전에는 이 동석자가 ‘홍준표 캠프’ 소속이라는 루머도 흘리며 한칼로 내외부 두 명의 적을 베고자 했다.

그러나 박 원장과 조 씨의 대화 내용이 무엇이냐는 곁가지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검찰이 여권의 특정 인사 고발을 야당에 사주한 것이 사실이냐 여부다. 검찰의 정치 개입과 검찰 권력의 사유화 여부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것이 핵심이다. 제보자 조 씨의 정치 성향이나 제보 동기가 이 사건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혹 도둑을 보고 ‘저놈을 신고하자’라고 했다 하더라도 도둑은 도둑인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모든 정황은 도둑이 확실히 있었다는 것으로 흐르고 있다. 우선 제보자 조 씨의 제보 내용이 구체적인데 반해 관련자들의 대응은 한결같이 ‘모르겠다’거나 ‘기억이 없다’며 퇴로를 남겨놓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니다’라고 부인하기보다는 우선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뺌하는 것이 뒷날 유리하다는 점을 경험상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 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당시 김웅 의원이 ‘꼭 대검 민원실에다가 접수하고, 중앙지검은 절대 안 된다’고 당부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조 씨는 당시 사용한 휴대전화 등 증거자료를 제출하고 검찰의 디지털 포렌식에 협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이번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관련자인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나 김웅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해명은 의혹을 가라앉히기 보다는 더욱 키우고 있다. 사실과 진실 규명을 업으로 삼아온 검사 출신 김웅 의원은 유독 히 사안에서는 “기억이 없다”는 말만 되뇌고 있다. 그가 검사 시절 경험을 담은 책 ‘검사 내전’에서는 수십 년 전 사건까지 자세히 기억하면서도 불과 1년 전의 고발 의혹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직 검사인 손준성(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부장검사는 “아는 바가 없어 해명할 내용도 없다”고 부인하는가 하면 심지어 언론을 피해 휴가를 가버리기도 했다.

고발장 초안이 오가는 정거장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은 “보좌관을 통해 들어왔다”며 “출처는 모른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고발장 작성자와 중간 전달자로 각각 지목된 손 검사와 김 의원 모두 관련 사실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신속·엄정한 수사는 불가피하다. 보수 언론에서 공수처가 너무 빨리 수사 착수에 나섰다며 못마땅해 하는 것은 트집 잡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보수 언론들은 입장이 바뀐다면 늦었다고 또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더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관계인의 증거 인멸로 실체 규명은 더 어려워질 것이고 정치적 혼란까지 가져올 수 있다. 공수처는 중립성을 잃지 않은 엄정한 수사로 이번 기회에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실제 공작정치였다면 이참에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반면 제보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윤 전 총장은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윤 전 총장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만 해도 엄정한 조사와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으나 막상 공수처가 신속한 압수수색 절차에 들어가자 야당 탄압과 정치공작으로 매도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번 ‘검찰 고발 사주’ 사건을 ‘박지원 게이트’로 규정하며 수세를 벗어나기 위한 국면 전환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것은 우선은 잘 대응하는 것 같지만 파국으로 가는 악수일 뿐이다. 부수적 파생 의혹으로 본질을 덮어보려는 정치공세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진상 규명을 위한 공수처 수사와 검찰의 조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사는 길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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