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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이웃과 함께 하는 한가위가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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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이웃과 함께 하는 한가위가 됐으면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1.09.1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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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우리 민족의 3대 명절중 하나인 추석은 오곡이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이라는 점에서 풍요로움을 연상케 한다.하지만 농사짓는 농민이 아닌 이상 추수의 기쁨보다는 상여금이 얼마나 나오는지에 관심이 더할 것이다. 상여금, 정상적인 기업이나 공무원들이 수령할 수 있는 월급 외에 돈이다.돈 뿐일까. 23일과 24일 연차·월차 쓰면 18일부터 26일까지 내리 9일을 쉬며 놀아도 월급은 제때 나온다. 편리함과 나태함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32~37도 폭염이 계속 돼왔는데 계절의 순환법칙은 어길 수 없는지 어느덧 9월을 맞이하고 추석이 눈앞에 다가오니 한낮의 쨍쨍한 날씨 속에서도 아침 저녁으론 제법 초가을다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추석이 4일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예전과 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사회 분위기가 움츠러든 탓도 있지만 과거와 비교해 세태가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탓이 커 보인다.

최근 조상님들 산소 벌초를 하면서 주변에 벌초하는 풍경이 예년보다 눈에 많이 띄지 않아 놀랐다. 보통 추석 연휴 2주 전 주말은 벌초 성수기로, 시골 산야는 잡초를 깎는 예초기 소리가 진동했다. 그러나 이날은 예초기 소리가 멀리서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코로나19로 일가친척이 한꺼번에 모이기 쉽지 않은 데다, 최근 들어 산림조합이나 지역농협이 벌초대행을 하면서 사람이 몰리는 주말보다는 평일에 벌초를 많이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태가 바뀜에 따라 벌초 풍습이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결국 이대로가면 앞으로 조상님들 벌초는 후손들 대신 대행업체가 하는 것으로 굳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추석이나 설날 명절 세태가 과거와 달라진 건 벌초 말고도 많다. 명절 차례만 해도 종교상 이유를 제외하고도 집에서 지내지 않는 가정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사찰에 맡겨서 지내는 가정은 전부터 있었지만 연휴 기간 떠난 휴가지에서 지내는 가정도 있다고 한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명절 차례 자체를 지내지 않는 집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명절 차례는 성리학의 가부장적·남성중심적 세계관이 투영된 일방적으로 여성의 희생을 요구하는, 뜯어고쳐야 할 문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앞으로 사라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것도 사실이다. 최소한 추석에는 송편을, 설날에는 떡국이라도 해서(아니면 돈 주고 사서) 차례상에 올리고 식구들과 나눠 먹는 풍습이라도 유지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라진 명절 문화 중에는 명절 빔(새옷)이 있다. 어린 시절 물자가 풍족하지 못했던 시기, 설이나 추석이 되면 부모님들은 쌀이나 보리쌀 등 곡식을 내다판 돈으로 아이들의 옷가지 한 벌씩은 꼭 챙겨셨다. 아이들은 명절 전날 이 옷을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 들면서 다음 날 그 옷을 입을 생각에 가슴이 설레곤 했다. 지금이야 옷가지 등 물자가 워낙 흔해져서 별 의미 없는 풍습이 됐지만 어린 시절 이러한 추억이 있는 중장년 세대들은 지금도 명절이 되면 누가 양말이라도 한 켤레 챙겨주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사라진 명절 문화 중에는 또 명절 전후 일가 친척 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풍습이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명절날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면 꼭 이웃 마을에 살고 계시는 친척 어른들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도록 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성묘를 하러 멀리서 고향마을을 찾은 친척들을 만나 인사를 하고 소식들을 주고받았다. 스마트폰 단체 메시지로 명절 인사를 나누는 디지털 시대에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지만 가끔씩은 그때의 아날로그 시대가 그리워진다.

코로나19 터널이 끝이 보이지 않으면서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국민들은 고통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여야 정치권은 물론 정부와 청와대조차 내년 3월 대선에만 올인하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여름 능금이 익어갈 때/ 우리는 꿈꾸었지 가을에 올 행복을/ 그러나 철없는 여인의 허무한 꿈/ 능금이 빨갛게 익기도 전에 사랑은 끝났는가’ (가요 ‘가을이 오기 전에’). 추석 밤 보름달이라도 제대로 봤으면 좋겠다.

가을의 풍요는 나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벼나 과일이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성숙할수록 겸손함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고 있는 것 같다. 해마다 추석명절이 다가오면 선조들이 전해오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그 의미를 되새겨본다.

너나없이 사는데 쫓겨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는 게 요즘 우리 삶이다. 그래도 우리 조상들은 명절 때면 어려운 이웃의 굴뚝에 밥 짓는 연기가 오르는지를 살폈다. 힘들고 외로운 이웃은 없는지 주위를 돌아봐서 있다면 챙기고 보듬어줘야 이웃이고 이웃된 도리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그들을 위로하는데 미력이나마 동참하는 아름다움이 충만한 중추절이 됐으면 한다.

결실의 계절 가을에 마주하면서 내 인생의 내 가을들녘에는 어떤 결실을 거둘 것인가?! 정견(正見)이 정답이다. 세상을 바로 보는 것이다. 보는 만큼 보인다. 바르게 보면, 바르게 생각하게 되고 바르게 말하며 바르게 행동할 수가 있다. 밖으로만 내달리는 의식을 안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매일 좋을 순 없지만 매일 웃을 순 있다. 하늘 아래 가장 큰 선물은 오늘이다”라는 모두의 글귀를 다시 음미해본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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