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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문자의 일점일획, 괜히 점찍고 줄그은 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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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문자의 일점일획, 괜히 점찍고 줄그은 것 아니다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10.1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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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문자(文字)는 가나다...나 ABC...와 같은 여러 지역 문명의 글자를 가리키기도 하며, 동아시아에서는 한자(漢字)의 정식 이름이기도 하다. ‘문자의 일점일획(一點一劃)에 뜻 없는 것이란 없다’는 문자학의 개념은 한자의 원리이지만, 역시 지구상 여러 문자에 통하는 보편적 이치다.

이 이치를 생각하면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글자라도 (모양이) 다른 글자는 차이점을 가진다는 점을 짐작 또는 유추할 수 있다. 한자와 같은 그림이 바탕인 상형문자는 더 그렇다. 

비슷하면서 서로 다른 뜻, 말과 글 공부의 바탕이다. ‘세상에 대한 인식’이 처음 생기는 지점이다. 서양에서 ‘필로소피’라고 하는 학문과 비슷한 개념이다. 동양에서는 이를 철학(哲學)이라고 번역했다.

요즘 정치의 계절에 어지럽게 흩뿌려지는 말글들 중에서 그 차이를 생각하지 않고 대충 질러 쓰는 단어들이 자주 보인다. 정치인도 (정치)평론가도 언론인도, 이제 말글의 이런 차이에 대해 꼼꼼히 생각 안하는 모양이다. 사례로 세 가지 경우를 제시한다.

먼저 예측(豫測)과 예상(豫想)의 경우를 보자. 豫는 ‘미리’나 ‘앞서서’의 뜻이다. 測과 想은 발음도 모양도 다르다. 물론 뜻도 다르다. 그런데 요즘 많은 이들이 이 둘을 같은 뜻으로 쓴다.

측(測)은 수량(數量)을 잰다는 단어다. 측정(測定)은 (자나 되로) 재서 길이나 숫자, 분량을 정한다는 뜻이다. 예측은 미리 측정하는 것이다. 어원(語源 말밑)으로는 세발 솥(鼎 정)에 칼(刀 도)로 눈금을 긋고 물(氵 수· 水와 같은 글자)을 부어 그 분량을 측정하는 상황이다.

상(想)은 ‘생각한다’는 말이다. 마음(心 심)으로 본다(相 상)는 뜻이다. 나무(木 목)를 지켜보는 눈(目 목)이 볼 相의 바탕이다. 예상은 미리 (마음으로) 상상한다는 뜻이다. 예측과 예상의 차이를 알고 나면 그 말들의 쓰임새도 적확(的確)해질 것으로 본다. 

둘째, 자처(自處)와 자청(自請)의 경우다. 이는 자기(自己) 또는 스스로(自)의 뜻에 서로 다른 두 개의 낱말을 합친 말이다. 그래서 두 말의 뜻은 다르다. 요즘 자주 보는 ‘기자회견을 자처하다’는 말은 ‘자청하다’가 맞다. 청(請)을 부탁해 구한다는 의미다.   

자처는 자기가 (자기 아닌) 어떤 존재로 처신(행동)한다는 뜻이다. 處(처)에는 처단하다는 뜻이 있어 자살(自殺)이란 ‘무서운 말’로도 쓰인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자청은 자원봉사와 같이, 자기가 스스로 (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어떤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셋째, 대첩(大捷)은 상당수 사람들이 생각하듯 한 판 크게 이기는 것, 대전(大戰)이나 대국(大局·큰 국면)이 아니다. 한산도대첩은 이충무공이 왜군을 한산도바다에서 크게 물리친 큰 승리(大勝 대승)의 이름이다. 첩(捷)=승(勝)인 것이다. 

한산도 바다의 큰 전투인 한산도대전이나 한산도대국에서 크게 이긴 것이 한산도대첩이나 한산도대승인 것이다. 자주 언급되는 사례 중 하나다.

오늘 본 이 사례들 예측과 예상, 자처와 자청, 대첩과 대전 등이 분별없이 공문서나 신문방송을 타면 옳지 않은 말과 그 뜻이 널리 퍼지고 후세에 전해진다. 

전에는 신문사 등 언론사에 교열부(校閱部) 또는 교정부(校正部)라는 부서가 있어 문장과 사실(팩트)의 정오(正誤·옳고 그름)를 바로잡았다. 요즘은 기자 또는 담당자의 일일뿐 대부분 회사에 전문가나 관련 조직이 없다고 한다. 

한글(훈민정음)로 표기하는 한국어에 대한 큰 자부심만큼 이를 바르게 쓰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다. 말은 생각의 씨앗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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