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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47] 인생은 식탁위에 차려진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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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47] 인생은 식탁위에 차려진 음식(?)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1.10.20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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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시인(1952년생)
경북 상주 출신으로 서울대 불문과 졸업. 1977년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

<함께 읽기> 우리는 끼니때마다 다양한 음식으로 식탁을 차리고, 거기 놓인 음식을 먹고 나면 다 치워버린다. 하지만 식탁에 차려진 음식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을 게다. 차려졌다가 사라지는 존재와 같은. “식탁 위에는 찢긴 햄버거 봉지와 / 우그러진 콜라 패트병과 / 입 닦고 던져놓은 종이 냅킨들이 있다” 인간도 세상이라는 식탁위에 차려진 음식과 같다. 어떤 이는 ‘찢긴 햄버거 봉지’로, 다른 이는 ‘우그러진 콜라 패트병’으로, 그냥 무작위로 선택돼 흐트러진 채 놓일 뿐. 우리가 세상에 던져짐도 우리의 선택으로 그 자리에 있음이 아닌 것처럼. “그것들은 서로를 모르고 / 가까이 혹은 조금 멀리 있다” 그것들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 헌데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것들이 나의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 사라질 때도 예고 없이 사라진다. “아이들아, 별자리 성성하고 / 꿈자리 숭숭한 이 세상에서 / 우리도 그렇게 있다” 별자리는 희망을 상징하지만 그밤 꿈자리는 뒤숭숭하다. 누구나 꿈은 지니지만 그 꿈을 이룰 가능성은 별로 없듯이, 새벽이 오면 사라지는 별처럼 우리네 인생도 그리 허무하다. “하지만 우리를 받아들인 세상에서 / 언젠가 소리 없이 치워질 줄을 /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그 자리에 놓여 있을 것처럼 행동한다. 허나 바로 다음 순간에 일어날 제 인생의 일들에 대해서는 깜깜한 것도 사실이다. 오늘 한 점 차질 없이 계획했던 일도 어긋나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고, 아침에 멀쩡했던 사람이 저녁이 가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린 식탁일까, 식탁에 놓인 음식일까? 다들 식탁이 되길 바라지만 식탁 위에 잠시 놓인 음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시인은 노린 것 같다. 치워지기 전에 삶의 자세를 지금보다 훨씬 진중하고, 사려 깊게 가지라고. 

“스스로 만 년 동안이나 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 죽음은 언제나 그대 위에 걸려 있다. 그대가 사는 시간은 그대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선량하라”, ‘마르쿠스 아우델리스’는 명상록에 적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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