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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순의 나물이야기] 정월대보름의 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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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순의 나물이야기] 정월대보름의 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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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2.1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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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순 대한민국전통식품명인 남양주시 하늘농가 대표

돌아오는 15일은 정월대보름날이다. 천지인(天地人)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部族)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날이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는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해 농사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날이었다. ‘삼국유사’에 정월대보름에 대한 첫 기록은 있으나, 그 이전부터 정월대보름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절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정월대보름은 설, 추석에 이어 대표적인 세시 명절이다.

정월대보름은 설 이후 처음 맞는 보름날로,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 동안 민속축제기간이었다. 이 시기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월대보름날에는 오곡밥·묵나물·부럼을 먹으며 한 해의 건강과 소원을 빌었다. 

정월대보름 전날에는 팥, 수수, 차조, 찹쌀, 검은콩 등을 넣어 오곡밥을 지었다. 오곡에 어떤 곡식이 포함되느냐 하는 것은 지방에 따라 다소 다르다. 오곡밥은 겨울의 끝인 한 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대보름날에 특별히 먹었다. 과거에는 다양한 음식이 드물었기 때문에 곡물을 말려 놓았다가 겨울에 영양결핍 방지와 입맛을 살려주는 원기음식이었다. 

다른 성(姓)을 가진 3가구 이상의 밥을 먹어야 그해의 운과 건강에 좋다고 해 여러 집을 다니며 서로의 오곡밥을 나눠 먹기도 했다. 또 그날 하루 동안 아홉 번 먹어야 액운을 막을 수 있다며 오곡밥을 틈틈이 여러 차례 조금씩 나눠 먹었다. 그 해의 곡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염원도 담겨 있다. 이들 오곡은 5개 장부(臟腑;간-팥, 심장-수수, 비장-차조, 폐-찹쌀, 신장-검은콩)에 조화롭게 영양을 공급해 주는 효능이 있다. 

오곡밥과 함께 아홉 가지 묵나물을 삶아서 기름에 볶아 같이 먹으며 풍농(豐農)과 안녕을 기원했다. 아홉 가지 묵나물은 말린가지, 고사리, 도라지, 아주까리(피마자), 시래기, 취나물, 고구마순, 다래순, 호박고지 등이다. 딱 정해진 것은 아니다. 또는 다섯 가지, 일곱 가지 정도의 나물을 준비해서 먹기도 했다. 나물은 홀수로 정해서 먹는 풍습이 있다. 이런 묵나물은 겨울을 대비해 봄, 여름, 가을에 나오는 다양한 나물을 삶아서 말려 두었다. 나물 볶는 날이면 온 마을에 나물의 구수함과 특유의 향이 퍼지면서 잔치의 시작을 알렸다. 모두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는 날이었다. 

대다수가 가난했고 겨울철에 신선한 채소와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 나물은  식이섬유, 철분,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지혜로운 음식이었다. 무엇 보다 말려 두면 변질되지 않아 겨우내 영양가 있는 여러 종류의 채소를 즐겨 먹으며 기운을 북돋아 농사철인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정월대보름날에는 일찍 일어나 잣, 호두, 땅콩, 밤 등을 먹었다. 부럼은 지방이 부족한 겨울에 식물성 지방을 보충해 주고, 풍부한 나이아신 성분은 피부를 좋게 해준다. 한의학적으로는 각종 체액, 혈액의 순환과 관련된 내용을 삼초(三焦)라고 부르는데 부럼이 이 삼초(三焦)를 윤활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부럼을 자기 나이 수대로 먹으면서 치아를 튼튼하게 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옛날 사람들은 부스럼은 역귀(疫鬼)가 퍼뜨리는 돌림병이라고 믿었다. 그 때문에 역귀를 물리칠 수 있는 신령의 목소리를 빌려 부스럼이 생기기 전에 미리 종기를 터뜨린다는 뜻에서 부럼을 깨물었던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정월대보름의 오곡밥은 새 생명을 시작하려는 오장육부에 영양소를 균형 있게 공급해 주었다. 묵나물은 새로운 봄을 맞아 사람들의 염원이자 기원이 듬뿍 담긴 음식으로 움츠렸던 우리 몸에 힘을 돋게 했다. 부럼은 식물성 지방을 공급해 우리 몸의 혈관을 윤활케 하며 영양을 흠뻑 뿌려주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가 숨어 있다.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세시풍속에는 건강까지 챙기려는 자상한 마음이 엿보여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우리 후대에도 영원히 계승됐으면 좋겠다. 

오미크론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요즘 정월대보름의 삼총사 오곡밥과 묵나물 그리고 부럼 잘 챙겨 먹고 올 한해 건강하기를 기원해 본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고화순 대한민국전통식품명인 남양주시 하늘농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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