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비핵화 협상에 서로 차분하게 대응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와 핵·미사일 시험 유예(모라토리엄)를 계속 유지할지에 대해 조만간 결정을 내린다고 북한 고위 관리가 15일 밝혔다. 이로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3월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침을 공표하며 극적으로 열린 양측의 비핵화 대화국면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 주목된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평양에서 외신 기자들과 외국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긴급 회견을 열어 '미국의 강도같은 태도'를 주장하며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미국과 타협할 의도도, 이런 식의 협상을 할 생각이나 계획도 결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타스와 AP 통신이 평양발로 보도했다.
최 부상은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중단을 계속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김 위원장의 결정에 달렸다며 "짧은 기간 안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조만간 북한의 추가 행동을 발표할 공식 성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 부상은 북한이 지난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아무런 합의에 이르지 못한 데 대해 깊이 실망했다고 밝혔다. 최 부상은 회견에서 북한이 지난 15개월 동안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중단하는 등 변화를 보여준 것에 대해 미국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타협을 하거나 대화를 이어갈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최 부상의 발언은 협상 및 미사일·핵실험 모라토리엄 중단 카드를 꺼내 들며 미국의 태도 변화를 강하게 압박하고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비핵화 조치의 일괄타결·빅딜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벼랑 끝 전술' 구사 가능성을 내비친 셈이다.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재연되는 가운데 한반도 정세 전반에 다시 암운이 드리우고 긴장이 높아지진 않을지 걱정스럽다. 북미 정상이 두 차례나 만났음에도 구체적 결실 없이 대화마저 중단되고 미사일·핵실험이 다시 강행된다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 전개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사태를 성급히 비관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최 부상이 북미 "두 최고지도자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은 신비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강조한 것은 위기감을 조성하면서도 협상의 여지를 남긴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최 부상의 기자회견으로 볼 때 협상 중단 등에 대한 김 위원장의 결정이 어느 정도 끝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물론 미국도 차분하고 신중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상황을 급격히 악화시킬 수 있는 어떤 조치도 북한이 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정치적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압박을 시작했는지 모르겠으나,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한 행보를 감안한다면 북한의 셈법을 넘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난 1년여간 어렵게 하나씩 진전시켜 온 모든 것을 수포로 돌아가게 해선 절대 안된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접점 마련이 불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는 전체 비핵화 이행방법을 담은 '빅딜' 그림에 합의하고, 이행은 단계별·동시행동원칙에 따라 해 나가는 방법도 있다. 북은 비핵화에 대한 상황 악화를 조치하지 말고 미국도 차분하고 신중한 대응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