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의 데스크席] 정치란 재물을 아껴 쓰는 데 있다

최재혁 지방부국장

2021-01-28     최재혁 지방부국장

방역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의 손실보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곳간 형편을 살펴가면서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입은 자영업 손실보상제를 놓고 총리와 부총리가 설전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시한 ‘자영업 손실보상제 법제화’에 대해 “논의는 하겠지만 과도한 재정지출은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홍 부총리는 SNS를 통해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이 같은 부총리의 반기에 정 총리는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며 강한 어조로 질타했다. 최소 수십조 원의 재정이 들어갈 법안을 재정 추계도 건너뛰다시피 하고 거대 여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포퓰리즘 법안 밀어붙이기가 심각하다. 내년 국가채무가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넘는 ‘빚 1000조국’이 된다.

홍 부총리의 얘기는 100% 옳은 소리다. 기재부 수장이 해야 할 말이고 할 일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같이 일해 본 공무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를 부드러운 사람으로 평가한다. 갈등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정책을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들어준다고 한다.

홍 부총리는 이런 이유로 ‘예스맨’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을 지낸 그가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과 경제부총리에 발탁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홍 부총리는 현 정부에서 스타일대로 일을 해 왔다. 부동산 규제 정책이나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을 묵묵히 수행했다. 자신의 경제 철학과 부합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정권에 맞춰 업무를 했다.

그런 그가 요즘 들어 소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에게 사표를 내기도 했다. 주식 양도세 부과 대상인 대주주의 기준을 당초 계획대로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자고 주장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표를 던진 것이다. 홍 부총리는 이재명 경기지사와는 앙숙에 가깝다. 이 지사가 주장하는 재난기본소득에 대해 홍 부총리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밝히면서 갈등이 커졌다. 이 지사가 “경제관료로서 자질 부족을 심각하게 의심해 봐야 한다”고 하자 홍 부총리는 “사소한 지적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고 맞받아쳤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자영업 손실보상제’에 신중론을 펴자 정 총리는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 개혁엔 항상 반대·저항세력이 있다”고 몰아붙였다. 홍 부총리는 페이스북에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재정부는 나라 곳간지기다. 국민이 부여한 의무이며 소명이다”는 말로 무차별 돈풀기에 반대했다.  

기재부 공무원의 의무는 국가재정법에 규정돼 있다. 1조에 “건전재정의 기틀을 확립하라”고 돼 있다. 16조에선 “재정건전성의 확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고 나와 있다. 헌법에선 정치권도 ‘나라 곳간 지킴이’를 존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한 57조가 그 조항이다.

김 차관도 해야 할 얘기를 잘하긴 했다. “자영업 손실 보상을 법제화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 법제화보다는 신속하고 탄력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했다. 김 차관이 정 총리의 질타를 받은 뒤 “법제화를 검토하겠다”고 말을 바꾼 것이 잘못된 것이다.

홍 부총리가 상관인 총리에게까지 ‘바른 소리’를 한 것은 더 이상은 안되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가채무는 1년에 100조원씩 늘어난다. 작년 11월 말 기준 826조원인 중앙정부 채무 총액은 내년엔 1000조원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국가채무비율도 몇 년 내 60%를 웃돌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손실을 본 사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무턱대고 재정을 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가 신용등급 강등 우려도 있다. ‘政在節財(정재절재)’ 공자는 “정치는 재물을 아끼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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