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필의 돋보기] 바로잡을 용기, 진정한 ‘통합’의 힘

최승필 지방부국방

2023-10-29     최승필 지방부국장

지난해 12월 연말을 맞아 전국대학 교수 935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1위로 선정했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야 정치인들이 끼리끼리 패거리에 속한 측근만 싸고도는 저질정치만 일삼는 행태를 반영한 사자성어로 평가받았다.

당시 ‘과이불개’를 추천한 여주대 박현모 교수는 “여야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대통령 탓’이라고 말하고 고칠 생각을 않는다”며 지적했다.

그리고 ‘과이불개’를 선정한 교수들도 그 이유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잘못’을 지적하거나 “현재 여야 정치권의 행태는 민생은 없고, 당리당략에 빠져서 나라의 미래 발전보다 정쟁만 앞세운다”며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비판했다.

이들은 또, 자성과 갱신이 한 명의 사람의 길인 반면, 자기 정당화로 과오(過誤)를 덮으려 하는 것은 소인배의 정치라고 비판하며, 잘못하고 뉘우침과 개선이 없는 현실에 비통함마저 느낀다며 개탄스러워하기도 했다.

이념진영 갈등이 점차 고조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자 또는 피해자가 될 것 같은 강박(强拍)에 일단 우기고 보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듯하다고도 꼬집었다.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서 공자는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군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자는 평수 군자의 사양에 대해 “군자는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어 학문을 해도 견고하지 못하다. 충(忠)과 신(信)을 주장으로 삼으며,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으로 삼으려 하지 말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공자가 살고 있던 시대는 난세(亂世)로, 모든 도덕률(道德律)에 일정한 기준이 없었다.

공자는 이에 위기감을 느끼고, 설사 일시적으로 자신이 믿는 가치관에서 벗어난 삶을 살더라도 잘못을 깨닫고 그것을 고치기만 한다면 무망하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강조한 것이다.

지난 2022년 한해 우리 정치권은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후 1년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변함없는 모양새다.

지난해 제21대 국회가 중간 반환점을 돌아 국정감사를 펼쳤지만 ‘민생’과 ‘복지’, ‘안보’ 등 알맹이 없는 ‘맹탕 국회’라는 비난을 받으며 낙제점을 받았다. 올 국정감사도 낙제점이다.

다음달 초 국회운영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 정보위 국정감사는 남았지만 지난 10일 시작한 국감 시즌은 사실상 종료됐으나 국민들은 ‘그들만의 난타전’만 지켜봤다.

국회 사무처가 대부분의 국감을 유튜브에 생중계 하는 등 국민들과의 접점도 높였으나 기대는 크게 벗어났다.

지난 25년간 전국 국감 현장을 평가해왔던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지난 24일 간이 평가를 통해 올 국감 중간 평가를 ‘C학점’으로 평가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도 국감 성과에 대한 응답률은 15%에 불과했고, 이중 절반 가까이가 성과가 없었다고 답했다.

이번 국감에서 상임위별로 국회의원들이 791개 피감 기관을 감사한 가운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등 일부 관련 기관장은 국감장에 나와 질문 하나 받지 못한 채 돌아가기도 했다.

의사진행 발언 횟수가 78회로 질의 횟수 41회보다 더 많았고, 대법원 감사는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파장으로 여야 간 책임 공방만 오갔으며, 11일 치러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여야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총출동해 유세 활동을 벌였다.

여야 모두가 국민들의 관심을 강서구청장 유세 현장으로 집중시키면서 정작 국정감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번 국감은 ‘저질 음모론’도 판을 쳤다. 최근 연예인 마약 사건을 두고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이번에 터진 연예인 마약 사건이 정부 기획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양평고속도로 진실공방, 채상병 순직 사고 수사 외압 공방, 홍범도 장군 흉상 육사 이전 논란 등 국감보다 정쟁 국감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국회가 정책이 아닌 정쟁에 몰두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23일 당무 복귀 첫 일성으로, 이른바 ‘체포동의안 가결파’ 징계 문제에 대해 “더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길 바란다”며 사실상 ‘통합’의 메시지를 내놓았지만 친명계와 비명계간 갈등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통합’ 메시지를 던진 뒤 불과 닷새 만인 27일 이 대표가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신임 지명직 최고위원에 애초 내정자였던 박정현 전 대덕구청장을 임명한 것이다.

비명계 저격을 위한 지명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비명계 일부 인사들은 ‘공천학살의 전초전’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분위기에 떠밀려 통합 메시지를 내긴 했지만 본인 진심은 그렇지 않으니 말과 행동이 따로 나오는 엇박자가 생긴 것이라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을 6개월여 앞두고 당 혁신위원회를 구성한 가운데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인요한(64·존 린튼) 연세대 의대 교수는 ‘통합’을 키워드로 제시하며 대대적인 혁신을 예고했다. 그는 “사람 생각은 달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이런 통합”이라고 강조했다.

‘잘못’을 바로잡을 용기(勇氣)가 없을 때 ‘진정한 통합’은 불가능하다. ‘통합’의 힘은 바로잡을 용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승필 지방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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