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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주력 업종 ‘시계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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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주력 업종 ‘시계 제로’
  • 이신우기자
  • 승인 2018.10.29 0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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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생산성 저하·규제 개혁 지연 등 기업 투자의욕 상실
“총체적 위기…중장기 체질 개선 보다 당장 숨통 틔워야”

 우리 경제의 고속성장을 이끌어온 주력 업종이 일제히 ‘내리막길’에 선 형국이다.
 대내외 악재 속에서도 그나마 상승세를 타던 업종은 정점을 지나고 있고, 일찌감치 부진에 시달리던 업종은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가기는커녕 ‘지하’까지 뚫고 내려갈 것이라는 우려에 휩싸였다.
 미중 무역전쟁에 더해 미국 금리 인상, 노동생산성 저하, 규제 개혁 지연 등 끝없는 장애물에 기업들은 투자의욕을 상실한 채 ‘불확실성의 터널’에 갇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視界) 제로(0)’ 상태에 빠진 듯하다.
 주요 그룹들이 4차 산업혁명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나서면서 ‘대한민국 수출 견인차’의 엔진 소리가 다시 커질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지만 실적·주가·투자 등의 기업 지표는 당분간 ‘다운턴(하강국면)’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3분기 실적은 비극의 서막인가
 국내 대기업들이 최근 잇따라 내놓고 있는 올 3분기 실적은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시가총액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슈퍼호황’이 예상보다 장기화한 데 힘입어 사상 최고 성적표를 써냈지만 4분기에 이어 내년에는 실적이 감소세로 돌아선다는 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과잉 투자’라는 해외 경쟁업체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3∼5년 전 과감한 설비·연구개발(R&D) 투자에 나선 ‘선견지명’ 덕분에 이어가던 실적 신기록 행진이 결국 막바지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대외 변수에 민감하기 때문에 미중 통상분쟁의 ‘유탄’에 자칫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고, ‘반도체 굴기’를 부르짖는 중국의 대규모 투자는 임박한 위협이 됐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가격은 이미 하락세로 돌아섰다.
 자동차 업계의 3분기 실적은 몇 년 전부터 예고된 ‘위기설’이 현실화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말 그대로 ‘쇼크’ 수준이다.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1년 전의 4분의 1 수준에 그쳤고, 영업이익률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보다 못한 1.2%까지 떨어지면서 많이 팔아봐야 ‘쥐꼬리’ 이익만 얻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기아차의 영업이익은 0.8%였다.
 지난 수년간 적자에 허덕인 한국GM은 구조조정 비용을 특별회계 손실로 반영해야 하고, 쌍용차와 르노삼성차도 부진에서 허덕이고 있다.
 특히 미국 GM, 일본 도요타, 독일 폴크스바겐 등 외국 경쟁업체들의 ‘쾌속 질주’ 속에 우리 업체들만 ‘후진’을 거듭하면서 자동차 산업은 물론 제조업 전반에 ‘적신호’가 켜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양상이다.
 최근 수년째 업황 부진의 수렁에 빠져 있는 조선·해운 업계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현대중공업은 올 2분기까지 3분기째 적자를 이어갔고, 삼성중공업도 1분기 흑자에서 2분기에는 1000억 원 넘는 적자로 돌아섰다. 대우조선해양은 1·2분기 흑자를 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거의 반토막이 됐다.
 증권가에서는 3분기에도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진해운 대신 정부의 회생 손길이 닿았던 현대상선은 상반기에만 약 370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분기까지 무려 13분기 연속으로 적자를 냈고, 당분간 흑자 전환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그나마 최근 ‘호황’을 누리던 화학 업종도 지난 6월을 기점으로 제품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선 데다 미중 무역분쟁과 국제유가 상승 부담 등으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불황보다 무서운 불확실성”
 업황이 나쁜 것은 경기 사이클에 따라 개선을 기대할 수 있지만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게 공포감을 키우는 주된 요인이라고 주력 업종의 대기업들은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미중 무역분쟁은 아직 본격화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파장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미국 금리가 계속 높아지면서 국내 증시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경우 우리 기업들의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복잡한 국제 정세와 맞물린 국제유가의 불안한 흐름도 기업들에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끊임없는 정쟁으로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줄 개혁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가운데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노사 갈등 등을 둘러싼 논란이 경제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기업들은 한숨만 짓고 있다.
 실제로 산업연구원이 이달 들어 국내 591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4분기 시황과 매출 전망은 각각 92와 95로, 기준선에 미치지 못했다. 경기 전망이 그만큼 어둡다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도 상황이 간단치 않다. 올해 1∼9월 누적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증가한 4504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보호무역주의 강화, 글로벌 경쟁 심화, 해외생산 확대, 기저효과 등의 영향으로 증가세는 둔화할 공산이 크다.
 연일 연저점을 찍고 있는 국내 증시는 이런 상황에 둘러싸인 경제 주체들의 불안 심리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경제의 체질은 굳건하다고 강조하던 정부도 점차 이런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분위기다.
 산업부 관계자는 “주요국의 수입규제 확대 등 보호무역주의 추세,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금융시장과 환율 변동성 심화 등 우리 수출의 여건이 녹록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계에서는 동반성장·상생 협력을 기치로 내건 현 정부의 노동자 친화, 비정규직 보호 등의 정책 취지는 공감한다면서도 ‘기업 옥죄기’로 비칠 수 있는 규제와 압박은 당분간 중단해 주길 바라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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