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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88] 지도자의 사악한 사과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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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88] 지도자의 사악한 사과도 필요하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8.07.18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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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권력자의 사과는 없을수록 좋다. 하지만 사과를 해야 할 때는 사과를 해야 한다. 사과해야 할 때 사과하지 않는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폭력이다.-

 

지도자라고 불리는 권력자들은 좀체 사과하지 않는 습성을 갖고 있다. 본능에 가깝다. 그들이 권력과 함께 갖게 되는 오만함이나 군림의식 때문이다. 자신은 완벽하다는 터무니없는 우월성도 한 몫을 한다. 모두가 잘못했다고 해도 그들은 쉽게 사과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들을 신과 인간의 중간쯤에 속한 존재로 인식한다. 권력의 속성이다. 그러한 속성은 권력의 비극이 된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고 하지만 권력자가 천국에 가기는 코끼리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이유다.

다만 권력자가 사과하는 경우는 딱 한 경우에 해당한다. 자신이 신과 인간의 중간지대에서 인간의 세계로 내려 올 때다. 감옥에 가기 직전이다. 그 것도 개인 비리에 따른 경우다. 드러난 개인비리를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때 ‘대국민사과’라며 겨우 고개를 숙인다. 국민의 분노를 삭이고 형량을 낮춰보려는 수법이다. 그 때는 이미 인간의 세계에서 한 단계 더 추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정책과 관련해서는 죽을 때까지도 사과하지 않는다. 대통령이었던 전두환도 그랬고 이명박도 그랬고, 박근혜도 그랬다. 이들 대통령의 공통점은 비극이었다. 개인의 비극이고 공동체의 비극이다.

문재인대통령이 지난 16일 국민들께 사과했다. 같은 날 지방의 한 광역단체장도 시민들을 향해 사과했다. 대통령이나 광역단체장이나 모두 사과의 내용이 개인비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옥에 갈만한 사안도 아니다. 자신의 정책이나 생각이 미흡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이룬다는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고 했다.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여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동시에, 가계소득을 높여 내수를 살리고, 경제를 성장시켜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를 목표로 한다”는 그의 정책목표에는 변함이 없으나 “정부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사과가 낯설다. 낯설음은 신선하다. 한 번도 그런 류의 이유로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잠시 욕먹더라도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변명으로 임기 말까지 가고, 퇴임하게 되면 그만일 수도 있는 일에 그는 사과를 택했다.

IMF 시절보다 더 힘들다는 삶의 현실 속에서도 대통령의 사과에서 국민들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들었던 돌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사과로 국민들은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금 새로운 방향을 생각하게 된다. 대통령의 사과가 가져온 효과다.

같은 날 이용섭 광주시장도 시민들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그는 전임시장 때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이라 하여 사라졌던 관사를 부활시키려다 ‘구시대 역행’이라는 시민들의 비판이 일자 “제 생각이 짧았다”고 물러섰다. 그는 “관사 사용 관행에 대해 문제의식이 부족했다”며 “규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시민이 원하는 길이 아니라면 가지 않을 것”이라고 사과했다.

1주일 전 관사에 입주했던 그는 이제 자신의 자택으로 이사를 하게 될 테고 이미지를 구긴 것도 어쩔 수 없다. 관사에 입주하기 이전에 ‘문제의식 부족’을 깨달았으면 더 좋을 뻔도 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이제라도 빠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가 대통령직속의 ‘일자리창출위원회’부위원장으로 임명된 뒤 “국민의 일자리는 생각도 않고 자신의 일자리만 챙겼다”는 일부 곱지 않은 시선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관사를 버림으로써 그는 관사의 유용성을 잃었지만 시민신뢰의 한 단초는 마련한 셈이다. 그가 4년 뒤의 시민들을 바라보았는지, 청와대를 바라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닐 수도 있고 둘 다 관련이 있을 수도 있지만 바라보는 교정 시선이 좀 더 넓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물론 권력자의 사과는 없을수록 좋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흠결이 적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과를 해야 할 때는 사과를 해야 한다. 사과해야 할 때 사과하지 않는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폭력이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군림’이나 ‘우월’을 본능으로 하는 권력의 속성이 없거나 아니면 훨씬 더 지능적인지도 모른다. 마키아벨리는 위대한 군주로 추앙받기 위해서는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지라.”고 군주론에서 역설했다.

문 대통령이나 이 시장의 사과가 착함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사악함에서 행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착함’이나 ‘사악함’은 관심사가 아니다. 관심사는 그들의 사과가 개인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국민과 시민을 위한 것인가이다. 때로는 지도자의 사악한 사과도 필요하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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