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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행의 사회적 책임과 이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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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행의 사회적 책임과 이자놀이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8.08.3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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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가 태동할 무렵인 13세기 지중해 연안에서는 상업적 교역이 활발했다. 이와 함께 무역상의 금화를 보관해주는 금화 보관소와 여러 종류의 화폐를 교환해주는 환전상이 성행했는데 이것이 은행의 시초가 됐다. 당시 은행가들은 길거리에서 탁자를 놓고 영업을 해서 뱅크(Bank)의 어원이 이탈리아어로 ‘탁자’라는 의미인 ‘방코(Banco)’로부터 유래된 연유다.

현대적 은행의 형태는 이보다 한 세기 이후인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이때부터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해주는 자금중개 역할을 하는 은행이 등장했고 이로 인해 국가 간 교역은 더욱 활성화됐다.

세계 경제사에서 은행은 경제 성장의 주춧돌 역할을 해왔다. 자금을 과잉된 곳에서 필요로 하는 곳으로 순환시킴으로써 국가 경제를 발전시켰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70년대 개발경제 시기에 은행들이 자금지원을 통해 경제성장 기틀을 조성하는데 커다란 이바지를 했다.

한국 사회는 이익과 영리활동에 대한 반감이 다른 사회에 비해 강한 듯하다. 필자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사례들은 우선 최근 2분기 실적을 발표한 주요 은행이 ‘서민을 대상으로 이자 놀이를 해 사상 최고 실적을 올렸다’는 이유로 몰매를 맞고 있다.

경영실적이 공개될 때마다 욕을 먹는 기업 집단이 있다.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라 좋아서 비판을 받는다는 점이 특이하다. 국내 은행들이다. 올해도 4대 시중은행의 상반기 영업실적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모두 상반기 당기순이익 1조원을 훌쩍 넘겼다. 직원 평균연봉도 1억원을 돌파할 기세다. 상반기에 1인당 평균 4750만원을 받았으니, 연말 성과급 등을 감안하면 그렇게 될거라는 얘기다. 중소기업 평균 초임(2400만원)을 석달 만에 벌어들이는 셈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산업 전반의 고전에도 불구하고 매년 최고 실적을 경신한다. 대출금에서 받는 이자 수입이 우리나라 은행 실적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은행에서 돈 빌려간 사람이 낸 이자가 은행의 역대급 실적과 평균연봉 1억원 시대를 열어주는 모양새다. 언론의 반응은 예년과 차이가 없다. `땅 짚고 헤엄치는 이자 장사로 성과급 잔치를 한다'는 비아냥 일색이다. 정치권의 눈길도 곱지 않다. 여당은 “예금 금리를 조금 올리고, 대출 금리는 대폭 올리는 방식으로 수익을 챙겨 성과급 잔치를 벌인 것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논평을 냈다.
 
은행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적법한 이자를 받았을 뿐인데 마치 부정 축재라도 한 취급을 받으니 말이다. 은행의 호황이 박수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알리는 통계나 지수들과는 180도 반대 지점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가계빚의 경우 올해 2분기 현재 1493조원으로 집계됐다. 정부의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전 분기보다 25조원(1.7%) 가까이 늘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빚은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다. 상환 보장이 어려운 악성채무가 많기 때문이다. 가계빚을 낸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자 부담에도 허덕이는 영세 서민들이다. 은행들이 일제히 원금 회수에 들어갈 경우 벌어질 상황은 안봐도 비디오다.
 
지난해 신규 음식점 폐업신고 비율이 92%를 기록했다. 개업한 음식점 10곳 가운데 살아남는 업소가 1곳도 안된다는 얘기다. 지난해에 국한된 수치가 아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간 평균 폐업률은 90.9%이다. 그런데도 음식점이 늘어나는 것은 폐업 이상의 개업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폐업하고 업주가 빠져나간 점포를 새 사업자들이 채우고 악전고투를 반복하는 형국이다. 570만에 달하는 자영업자 대부분이 같은 형편이다. 가계대출의 상당 부분이 어디로 흘러들어가서, 어떤 결과를 내고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은행의 빛나는 실적은 상당 부분 이들의 피땀으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실적의 기저에서 언젠가는 나라 경제를 뒤흔들 대형 폭탄이 쉬지 않고 시침을 돌리고 있다. 물론 서민대출과 부실대출이 급증하는 책임을 은행에 물을 수는 없다. 주주의 이익에 종사해야 하는 주식회사의 의무도 있을 것이다. 금융기관의 안정성은 국내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요인으로도 작동하는 만큼 흑자경영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문제는 수익에 걸맞는 사회적 책무는커녕 최소한의 염치조차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차가운 상술만 번득일 뿐 이자도 내지 못해 신음하는 고객들을 돌아보는 온기는 한 줌도 보이지 않는다. 서민들의 생계형 대출이라도 손을 보는 최소한의 배려 정도는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은행권은 그들의 실적과 연봉을 무럭무럭 키워준 사회에 전대미문의 채용비리로 보답했다.

비리의 행태는 기가 막혔다. 특정인 합격을 위해 맞춤형 전형을 동원하기 일쑤였다. 대상자가 영어회화를 잘하면 평가항목에 회화를 집어넣는 식이다. 하다하다 안되면 채용인원을 늘렸다. 자식의 면접위원을 맡아 최고 점수를 준 임원도 있었다. 검찰에 적발된 비리만 700건에 육박하고 전·현직 은행장 4명을 포함한 38명이 기소된 상태다.
 
탐욕이 부끄러운 고수익을 넘어 사회정의까지 유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가 이자놀이로 편하게 배 불리라고 은행 과점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경제적 약자를 보듬어 나라살림이 더 건강해지도록 기여하라는 취지도 담겨있을 것이다. 상생금융은 은행 존립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IMF 사태 때 장롱에 보관하던 결혼반지까지 들고나와 은행을 살려준 사람들이 누구인지 깊이 새겨보길 권한다
 
앞으로 은행이 담당해야 하는 공적 기능은 ‘다 같이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금융 서비스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포용적 금융에 힘써야 하며 생산적 분야로의 자금 지원을 통해 경제 혁신과 일자리 창출을 도모해야 한다. 이같이 은행이 사회적 책임 이행에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은행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회복되고 우리 사회는 보다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Bank’는 ‘은행’이라는 의미 이외에 홍수로부터 강의 범람을 막아주는 ‘둑’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은행은 줄곧 고객의 자산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역할을 해왔다. 이제는 은행이 고객의 자산을 지키는 일 외에도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보호막이 되어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사회적 기업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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