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세상읽기 94] 10월, 마지막 밤에 쓴 편지
상태바
[세상읽기 94] 10월, 마지막 밤에 쓴 편지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8.10.31 13: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K형 10월의 마지막 밤입니다. 어디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가요. 순천에 한 번 다녀가시지요. 산기슭의 드렁칡 넝쿨처럼 떠날 수 없는 사연들로 얽혀있겠지만 순천에 오시면 그 또한 핑계였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는 따스함이 그리울 정도이니 어느새 가을이 깊어가고 있나 봅니다. '영원처럼 우는' 가을이 아니면 어느계절에 이처럼 내면의 언어로 우리의 육신을 채우겠습니까. 악다구니 세상이 가엾어 울고 싶은 계절, 10월의 마지막 밤이 겨울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눈에 문득 들어온 하늘은 한 편의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들녘의 풍성한 알곡은 다이아몬드보다 더욱 순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바뀌면서 사계절이 불분명해지고 있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이 계절만큼 아름다운 계절이 어디 있을까 싶네요.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 같고 아무렇게나 흥얼거려도 노래가 되어 흐를 것 같으니까요.

누군가 그리운 계절입니다. 김소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지는 날들입니다. 가슴 뛰게 했던 어느 날의 여인만이 어찌 그리움이겠습니까. 오래전 돌아가신 부모님이 더욱 그립고 젊은 날의 나도 그리워지는 날들입니다. 살다 보면 삶을 채웠던 순간들이 모두 그리움입니다. 그립지 않은 게 어디 하나라도 있을까요. 이 계절은 삶의 순간들 그 자체가 모두 그리움이고 아픔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류시화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했지요.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그리고 내 안에는/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내 안에 있는 이여/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리움의 대상이 곁에 있어도 그 대상이 어찌할 수 없이 그립기만 하는 계절입니다. K형 10월의 마지막 밤입니다. 어디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가요. 순천에 한 번 다녀가시지요. 산기슭의 드렁칡 넝쿨처럼 떠날 수 없는 사연들로 얽혀있겠지만 순천에 오시면 그 또한 핑계였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순천만습지의 가을은 광활한 갈대밭 데크 사이로 눈부시게 활짝 핀 갈대 꽃의 절정기를 맞고 있습니다. 황금빛으로 물든 잎사귀에 눈부시게 피어난 갈대꽃이 있는 순천만습지에서는 오는 2~4일까지 ‘제20회 순천만갈대축제’가 펼쳐집니다. 올해로 20회째를 맞는 이번 축제에서는 ‘갈대가 노래하는 평화! 순천만에서. . . ’를 주제로 안개 낀 바다로 출항하는 ‘아침 선상투어’와 갈대와 함께하는 ‘가을음악회’, ‘갈대 연인의 밤’, ‘생명·평화·문화체험 플리마켓’, ‘순천만의 삶의 이야기와 사진전’ 등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160만 평의 광활한 순천만 갈대숲을 거닐다 보면 우리나라도 이제는 고속도로 못지않게 자연이 만든 습지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시대는 이제 고속도로의 가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불구불 황톳길의 느린 질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순천만의 갈대가 추수를 기다리는 벼 이삭처럼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며 파란 하늘 아래 아스라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갈바람에 손짓하는 갈대숲 사이로 살 오른 짱뚱어와 흑두루미 가족 훨훨 날고 뻘밭에서는 칠게, 밤게, 농게, 말똥게 등이 게네들끼리 까르르 웃어제끼는 순천만은 순천만의 자랑을 넘어섭니다.

세계적 여행 정보지인 ‘미슐랭 가이드’가 최고의 영예인 별 세 개로 적극 추천한 곳이 이곳 순천만입니다. 2006년에는 연안습지로는 국내 최초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었고 지금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여행하기 가장 좋은 도시로 꼽고 있는 곳이 순천입니다.

지난 25일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13차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순천이 람사르 습지도시로 최종인증되었다고 합니다. 순천시는 앞으로 국제사회가 인증하는  '람사르'상징 브랜드를 6년간 사용할 수 있으며 정부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네요.

순천만국가정원과 순천만습지를 걸으며 힐링 된 몸과 마음을 위해 인근 식당을 찾아 짱뚱어 탕의 그 걸쭉한 맛으로 출출한 배를 달래셔도 좋습니다.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묶어가며 맘씨 좋고 솜씨 좋은 순천웃장 국밥집 아줌마의 인심에도 흠벅 젖게될 겁니다.

혹시 그리움의 카테고리에 옛 초가삼간 고향집이 있나요. 순천 낙안읍성에 들리세요. 훌쩍 커버린 탓에 작아져버린 돌담 울타리 너머로 코흘리개 어린 시절이 K형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실개천이 휘돌아나고 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향수’ 한 소절이라도 불러보지 않고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계절입니다.

그래도 아쉬우면 우리나라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와 3대 삼보사찰 중 승보사찰로 조계종의 근본 도량인 송광사를 들려도 비울 수 있고 또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순천에 오실 때는 시계줄을 풀어 놓고 오세요. 마치 졸음에 겨운 고양이처럼, 가을 하늘 뭉게구름처럼 포근하고 아늑하게 흐르는 시간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있는 듯 그게 둘이서 셋이서 함께 오셔도 좋습니다. 그냥 혼자서 오시면 또 어떻습니까. 발길이 머무르는 곳마다 그대의 그리움이 눈길에 어릴 텐데요. K형! 이 계절에는 순천이 곁에 있어도 분명, 순천이 그리울 겝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