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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96] 세살 가난이 평생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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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96] 세살 가난이 평생 간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8.11.28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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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 가난한 자들에게 겨울은 더욱 혹독하다. 흑두루미는 따뜻한 순천만습지로 날아들지만, 가난한 자들은 혹한의 계절에 갈 곳이 없다.-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통합 강화’는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최우선의 국가비전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백년대계를 내다 볼 국가비전이자 모델로 ‘포용국가’를 천명하고 3대 비전과 9대 전략을 발표했었다. 3대 비전의 첫 번째가 불평등과 격차 해소를 통한 사회통합 강화다.
 
“불평등 심화는 노동생산성과 사회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빈곤의 대물림 현상까지 초래해 경제성장과 안정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청와대의 부연설명이 아니더라도 국민 누구나 옳은 말이라는 데 공감한다.
 
문제는 정부의 이러한 최우선의 국가비전과 청와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는데 있다. 개선될 기미초자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의지를 비웃듯 더욱 심화되고 있다.
 
물론 박정희 정권 때부터 시작돼 이명박을 거쳐 박근혜 정부 시절 곪아터진 사회 양극화가 이 정부에서 한 순간에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국민들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각종 지표는 전 정권을 들먹이기에는 무안할 만큼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3분기 가계 동향 조사결과’는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소득격차의 사회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자료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가구의 평균 소득이 무려 5.5배 넘게 차이가 났다.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상위 20%가 8.8%가 올라 매월 973만원을 버는데 비해 하위 20%는 오히려 7%가 줄어 131만원을 벌었다.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고, 부유한 자는 더 부유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명박이나 박근혜 때의 일이 아니라 올 3분기의 현상이다. 지난 1분기에도 소득 하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은 역대 최대로 급감했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도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연구원이 발표한 기업규모별 임금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대·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선진국보다 더 크게 나타났다. 1980년 초중반까지만 해도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봉급은 대기업의 97%였으나 지난 2014년에는 60%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당대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후세에 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대물림되고 있다. ‘세살 가난 평생 가는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5~2016년 조사된 ‘한국복지패널’ 자료를 활용해 아동빈곤 실태를 분석한 결과는 심각의 상태를 넘어 위기에 처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자료에 따르면 청년들 10명중 3명은 어린 시절 가난을 경험했으며, 빈곤기간이 6년 이상이었던 이들은 10명중 7명이 대학을 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패널은 나이나 소득계층별로 조사 대상자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살펴보는 조사다.

어렵지 않은 추론이지만 분석결과 어린 시절 6년 이상의 장기 빈곤을 겪은 청년들 중에는 일용노동자로 일하는 이들이 가장 많았으며,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더구나 중위소득의 절반도 벌지 못하는 청년들은 86.7%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네 번째로 소득 불평등이 심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소득 상위 10% 계층이 전체 소득의 43%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러한 소득 집중도는 칠레(54.9%)와 터키(53.9%), 미국(47.0%) 다음이다.

부유한 자는 ‘더없이 살기 좋은 우리나라’이지만 가난한 자는 ‘더 없이 살기 힘든 우리나라’인 셈이다. 빈곤의 대물림이 새로운 신분제가 되어 굳어지고 있다.
 
이는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려 사회 양극화를 해소, 포용국가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무색케 한다.
 
부의 편중은 이제 뇌관에 불이 붙은 폭탄과도 같은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멈출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더구나 갑질 회장님들은 사흘이 멀다 하고 부를 과시하다 신문지상을 장식하는가 하면 귀족 노조는 조금도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이래 역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소득격차에 따른 국민들의 아우성이다.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 최고의 좋은 정치는 국민들을 배부르게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좋은 정치를 하고 있는가.

가난한 자들에게 겨울은 더욱 혹독하다. 흑두루미는 따뜻한 순천만습지로 날아들지만 가난한 자들은 혹한의 계절에 갈 곳이 없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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