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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시, 프랑스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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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시, 프랑스답다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9.04.25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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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전란을 겪고도 856년 동안 살아남았으나 화재 발생 한 시간여 만에 96미터 높이의 첨탑과 지붕 3분의 2가 잿더미가 됐다.
 
4월16일 오후 6시30분(현지 시간) 발화한 화재로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폭탄을 맞은 듯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서울의 숭례문 화재를 떠올리게 했다. 856년 된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지붕에서 화재가 발생해 96m의 첨탑이 무너져 내리고 본관 지붕의 3분의 2 이상이 허무하게 붕괴됐다.

모두 탔다. 프랑스, 나아가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던 노트르담이 잿더미로 변했다. 화마가 휩쓸고 간 것. 프랑스인에게 노트르담은 상상 이상이다. 그들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것이 불에 탔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우리의 남대문 화재를 떠올리게 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성모 마리아’란 뜻으로 1163년 루이 7세 때 시작해 200년에 쳐 완성됐다. 고딕건축의 걸작으로 손꼽히지만 우리에겐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곱추’로 인해 친숙하다. 199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화재로 한순간에 소실된 세계적인 문화유산들은 많다. 지난 2008년에는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이 방화로 누각이 무너졌고, 2018년에는 라틴아메리카의 유물을 대거 소장한 남미의 가장 큰 자연사 박물관인 브라질 국립 박물관이 화재로 대다수의 유물이 소실됐다.

1792년 개관해 완벽한 음향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라 페니체 오페라 하우스’와 1847년 스페인에 지어진 오페라 하우스 리세우 대극장, 11세기에 지어진 영국 런던의 원저성도 화재로 일부 불에 탔다.

전쟁으로 무차별 파괴돼 사라진 문화유산은 더 많다. 급진 무장단체인 IS는 4000년 시리아의 고대 신전인 팔마리 유적을 무차별 파괴해 세계적 분노를 샀고, 시리아는 오랜 내전으로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6곳 가운데 5곳이 파괴됐다.

지난 2012년에는 아프리카 서부 말리에서 이슬람 반군이 팀북투의 이슬람 사원 등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파괴했다가 국제사법재판소에 넘겨졌다. 6·25전쟁 당시 수원 장안문과 금강산 유점사, 서울 광화문, 평양성도 파괴됐다.노트르담 대성당도 어떻게 보면 오래된 건축물에 불과하지만 세계인들이 화재 소식에 안타까워하는 것은 과거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박제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 시대를 사는 1300만명의 사람들이 매년 즐겨 찾는 살아 있는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화마를 입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재건을 위한 모금액이 하루만에 1조원이 넘는 기부금이 모아졌다고 한다. 주로 대기업이 돈을 냈단다. 11년 전인 2008년 2월의 숭례문 화재가 떠오른다. 70세 노인의 방화로 전소한 숭례문을 복원하는 데 우리 대기업들은 얼마나 힘을 보탰나. 프랑스인은 위기에 단결하고 강해지는 특성이 있는 것 같다.

노트르담 성당이 화마에 휩싸인 이번에도 프랑스인들은 기민하게 움직여 유물 손실을 최소화하고 복구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무엇이 프랑스인들로 하여금 위기에 강하고 외적에게 저항하는 인자를 만들었을까.

유럽의 중앙이라는 자부심과 문화다.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성당 중 하나이며 프랑스 파리시의 주교좌 성당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가장 큰 성당은 아니다. 유럽과 중남미에는 노트르담 성당보다 큰 성당이 즐비하다. 규모로는 마흔한 번째에 해당된다. 프랑스 안에서도 노트르담 성당은 크기로 다섯 번째 정도다. 가장 먼저 생긴 것도 아니고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컸다든가 높았다는 기록도 없다.

우리의 숭례문처럼 국보 제1호는 더욱 아니다. 최고 등급이 아닌데도 성모마리아를 뜻한다는 ‘노트르담’이라는 용어는 낯설지 않다. 문호 빅토르 위고의 1844년 작품 ‘파리의 노트르담’을 통해 만났기 때문이다.노트르담의 유고(有故)에서 위고가 보인다. 꼽추 콰시모도의 슬픈 사랑이 얽힌 성당은 관광객들의 감성을 두드린다.

프랑스 파리에 차고 넘치는 관광지 가운데 1위는 단연 노트르담 성당이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 점도 있지만 위고의 영향 덕분이다. 위고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프랑스의 국민 시인·소설가 대접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애착. ‘레 미제라블(1862년작)’로도 유명한 위고는 보수적 성향이 강한 교회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발해 19년 동안 망명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 노트르담 성당이 오늘날까지 형태를 유지해온 데도 위고의 힘이 직접적으로 작용했다. 나폴레옹 전쟁 종결 이후에도 혁명과 반혁명이 반복되며 계층 간 위화감이 극에 달했을 때 일단의 과격파 시민들은 성당에 손을 댔다.

귀족 문화와 종교의 권위를 부인하며 성당을 외양간처럼 쓰는 세태를 안타깝게 여긴 위고가 더 이상의 훼손과 파괴를 막으려고 쓴 작품이 바로 ‘파리의 노트르담’이다. 문화와 문학의 힘이 이토록 크다. 셰익스피어라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자랑하는 영국인들의 심정이 조금이나마 수긍이 간다.

문화의 저변에는 자기 정체성과 자부심이 배어 있다. 외환위기에 직면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한국인들의 금 모으기 운동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인은 다르다’며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성장을 여기서 그칠 수 없다’는 위기의식 덕분이다.

한국과 프랑스는 위기를 만날수록 힘을 내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프랑스는 선도 기능이 있는 나라라고 믿는다. 인류가 공유하는 기본 가치인 자유와 평등·박애의 정신과 근대적 천부 인권 사상을 대혁명으로 구체화한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소실된 노트르담 대성당을 5년 내 재건하겠다고 약속했다. 프랑스만의 자산이 아닌 만큼 세계인이 동참하는 국제기금을 통해 복구비용을 마련한다고 한다.프랑스인은 위대하다. 아픔을 딛고 재건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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