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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든 탑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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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든 탑이 무너졌다
  • 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 승인 2019.05.1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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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전국매일신문 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솥뚜껑은 색깔이 시커멓고 주름져 있어서 얼핏 보면 푸르죽죽한 회색빛을 띠는 자라의 등딱지와 비슷하게 생겼다. 자라에게 물린 사람은 너무 아픈 나머지, 자라의 등딱지와 비슷하게 생긴 솥뚜껑만 보아도 깜짝 놀라게 된다는 말이다.

 벌에 쏘여서 된통 혼이 난 적이 있는 사람은 붕붕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벌이 온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는가 하면 뱀에게 물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기다란 줄만 봐도 뱀인 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는다. 이처럼 어떤 것에 한번 혼이 나면 그와 비슷한 것만 보아도 지레 겁을 집어먹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포항지진의 후유증은 참으로 대단하다. 당해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대형트럭, 버스만 지나가는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윗 층 세탁기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공사장의 그리 크지 않은 굉음에도 밤잠을 설친다. 지금, 포항이 그렇다. 이처럼 포항시민들은 하루하루를 지진 트라우마와 싸우며 힘들게 버텨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또 다른 시한폭탄이 포항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포항시민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포항 앞바다에 설치된 ‘CO2 지중저장 시설’에 대한 지진유발 우려가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영일만 앞바다와 장기면 두 곳에서 추진한 CO2 지중저장시설(CCS)이 바로 그것이다. 13일에는 이같은 ‘CO2 지중저장시설 완전폐쇄 및 원상복구’를 촉구하는 포항11.15 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 성명이 나왔다.

대책위는 “지난 3월 20일 사상초유의 피해를 남긴 11.15 포항지진이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한 지열발전사업으로 인해 발생한 인재였다는 정부연구조사단의 결과발표로 포항시민들은 충격과 함께 깊은 허탈감에 빠졌다”며 이로 인해 “ 국민의 안전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 책무라 여겼던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졌으며, 두 달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어느 누구하나 진정성 있는 사과와 피해회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현실에 포항시민은 슬픔을 너머 분노 한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시설들이 “이산화탄소 포집 효과가 미미하고 경제성이 떨어지는 반면 지진유발, 수질오염, 환경피해, 질식에 의한 인명피해 등 많은 위험성이 있어 지역주민들에게 충분한 설명 등 대중수용성을 확보한 후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이 사업을 추진했다”며 완전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포항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CO2 지중저장시설(CCS)을 완전히 폐쇄하고, 영일만 앞바다와 장기면에 설치한 CO2 지중저장시설(CCS)철거와 원상복구, CO2 지중저장시설(CCS)부지에 대한 사후 모니터링 대책 마련도 촉구했다.

실제 지난2012년 6월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CO2 지중저장시설(CCS)이 지진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한 바 있다. 또 선진국인 독일, 네델란드 등에서도 이러한 위험성으로 인해 이같은 사업이 좌초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 국내 학자들은 CO2 지중저장시설(CCS)은 지열발전과는 엄연히 다르다며 기술의 사장(死藏)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사실에 심히 개탄스럽다.

더 큰 문제는 이 시설 폐쇄와 원상회복을 주장하는 시민들이 바램을 포항시가 애써 외면하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 우려스럽다. 피해금액이 3323억원에 달하고, 온통 도시를 패닉상로 몰아넣었던 그때 그 지진의 기억을 벌써 잊은 건 아닌지 더 걱정이다.

최근 포항시는 이 시설에 대해 취재 계획을 몇몇 언론에게만 알려 007작전 하듯 했다. 쉬쉬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이유가 궁금해진다. “해당 사업이 국책사업으로 추진됐지, (정부가)시나 시민들에게 추진 과정을 전혀 알려준 바가 없다”고 말한 포항시 관계자의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와 오브랩 (overlap) 된다.

그 인터뷰가 거짓임을 알기에는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경북 포항 앞바다의 이산화탄소(CO₂) 저장사업은 지난2008년 포항시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포항분원 설치를 위한 MOU 체결 과정에서 의회에 공식 보고하면서 공론화했던 사실이 한 언론을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언론에 따르면 2008년 9월 4일 제146회 포항시의회 임시회(폐회중)중 총무경제위원장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포항시는 (경제통상과장) 제안설명을 통해 “포항시를 자원개발기지로 육성하기 위해 2008년 5월 28일 포항시장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 간에 포항분원 설치를 위한 업무협약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포항분원에는 심해자원탐사선 탐해 2호가 정박하며, 공해상에 분포하는 석유 및 가스자원 탐사를 통해 국내 석유개발 기업에게 정보제공을 통한 지역 석유개발기업 육성기반을 확보하여 지역경제 및 국가경제의 동반 성장에 기여코자 한다”며 공해상 가스자원 개발사업을 공식 보고했다.

시는 또 “석유시추 시료보관 및 시추시료 실험실 건축비 약 50억 원, 이산화탄소 지중저장 실험동 100억 원이었지만 400억 원으로 현재 확정이 돼 지질자원 분원이 여기에 설치되면 400억 원을 여기 투자 할 것으로 확정이 돼 있다”라며 이산화탄소 지중저장시설의 사업비도 구체화했다.

포항시는 당시 사업추진의 상부기관을 묻는 위원들 질문에 현 산업자원부인 ‘지식경제부’라고 명시했으며, 사업추진 성사여부 질문에 대해서도 “포항에 CO₂지중저장시설 시험동 400억을 하겠다는 것이 보도도 된 바가 있고 해서 현재 상태로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는 한 그런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저희들은 추진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포항시는 CO₂지중저장시설의 지진유발 등 위험성에 대해 일체 보고하지 않았으며, 참석 시의원들 또한 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은 채 동의안을 원안가결했다.

이에 따라 포항지진 이후 ‘포항 이산화탄소 지중저장 실증사업’의 지진 유발 관련성 및 안전성에 대한 전문가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관련시설 설치과정에 대해 포항시가 몰랐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인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CO2 저장시설을 포항시가 몰랐다는 주장이 거짓이라는 정황은 또 있다. 지난해 5월 초 한 시민이 동빈고가대교 건설주변 CO2 저장시설이 있어 위험하다는 내용의 민원을 국민신문고에 제기한 바 있다. 당시 포항시는 CO2 저장시설은 포스코 4투기장 앞에 설치돼 있으며 시에서 추진 중인 송도와 항구동을 연결하는 도로건설공사와는 무관하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민원에 대한 답변을 보면 분명 포항시는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확실하다. 그런데도 포항시는 모 언론을 통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포항 앞바다 이산화탄소 저장사업과 관련해 시와 협력하기로 해놓고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포항시의 대처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행정 불신은 물론 포항시에 대한 신뢰마저도 떨어드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에 대한 비판 역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지진 복구를 위해 힘들게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린 느낌이다. 지진당시 수많은 공무원들이 흘렸던 땀과 눈물도 함께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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