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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09] 막말로 하는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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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09] 막말로 하는 표현의 자유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9.05.22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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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자유한국당이 집권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언어부터 달라져야 한다. 언어는 인격이라 했다. 인격이 그 정도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집권당이 되고 싶다면 정치용어부터 바뀌어야 한다.-
 
 
 참여정부시절의 얘기로 기억한다. 패기에 차고 재기발랄한 한 운동권 젊은이가 국회의원이 됐다. 그의 언행은 거침이 없었다. 좋게 보면 신선했고, 비판적 입장에서 보면 삐딱했고 경망스러웠다.

그래서였을까. 그에게는 한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좋은 말도 싸가지 없게 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그에게 붙는 수식어였다.
 
일부 지지층에서는 박수를 보냈으나 일반 대중은 그의 언행에 눈살을 찌푸렸다. 손익계산서는 그가 그런 재주로 득을 보았다고 쓰였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일등공신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개인에게는 득이었지만 그가 속한 집단에까지는 득이 되지 못했다. 그의 ‘싸가지 없는 말 재주’는 그가 속한 집단마저 ‘싸가지 없는 집단’으로 만들었다.
 
장관까지 지낸 그는 오래전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 요즘은 TV시사프로그램에서 그를 자주 보게 된다. 그가 많이 변했다. 뛰어난 ‘말 발’은 여전하지만 예전처럼 싸가지 없거나 경망스럽지 않다.

이제는 같은 말도 싸가지 없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말도 위트 있게 한다. 여유 있게 애둘러 말할 줄도 알고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말을 전달하기도 한다.
 
간혹 말에 뼈가 있고 가시가 있으나 그 뼈와 가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뼈와 가시는 감정이 입으로 연결돼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제는 그의 말이 말초적 감각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파장 있는 울림이 되고 있다. 포장만 그럴싸한 싸구려 화장품 같던 그의 말에 품격이 붙은 것이다.
 
변한 말투는 그에 대한 지지의 폭을 넓히는 효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가 속한 정치진영의 이미지에도 득이 되고 있다. 그는 정치복귀에 대해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진영의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의 결이 변한 것은 무엇일까.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어서 인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 훨씬 나이를 더 먹은 일부 정치인들이 내뱉고 있는 저급한 막말을 보라. 부끄러움보다는 막말을 자신의 권위나 권력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은 철없는 어린아이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말과 나이는 상관관계를 갖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의 말이 결을 달리하는 것은 그가 정치일선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효한 해석일 것이다. 정치를 떠났으니 유치하지 않아도 되고, 정치에 몸담고 있지 않으니 수치스러움이나 부끄러움도 알게 됐지 않을까 싶다.
 
정치권의 막말이 국민건강을 미세먼지 이상 오염시키고 있다. 미세먼지야 신체를 병들게 하지만 정치인들의 막말은 국민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는 점에서 미세먼지에 비유할 바가 아니다.
 
더구나 재앙의 막말을 뱉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기 보다는 자랑스러워하는가 하면 적반하장으로 손가락으로 상대방을 가리키는데 문제가 더 있다.

대상을 ‘정치권’이라는 표현으로 두루뭉술 싸잡아 비난하기보다는 ‘막말 프레임’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이 막말의 선봉에 서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5·18망언에 이어 보좌진에 대한 막말, 대변인의 막말 등 기억에 남는 막말만도 손가락으로 셀수 없을 정도다.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입만 열면 ‘좌익’프레임을 들이대고, 대통령을 한센병 환자에 비유하는가 하면 입에 담지 못한 욕지거리도 서슴없다.
 
성매매 여성을 비하하는 일베의 ‘달창’표현을 사용해놓고서도 “비속어인줄 알았으면 사용 했겠냐”고 항변한다.
 
그러면서도 나경원 원내대표는 하는 말이 “지금 ‘한국당 막말 정당’ 프레임 키우기에 모두들 혈안이 됐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막말을 지적하고 비판하는데 대해 “전체주의의 시작이며 표현의 자유 탄압”이라고 했다.
 
이 같은 막말의 행진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에 희망이 있는가 묻고 싶은 대목이다. 건전한 보수야당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절망을 나 대표는 정말 모르는가 보다.
 
물론 군사정권 이래 오랜 세월동안 ‘좌익’프레임에 기대어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유전자자 되어있는 정당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또 막말을 하여야만 골수 지지층이 뭉친다는 어쩔 수 없는 인간정서의 한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집권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언어부터 달라져야 한다. 언어는 인격이라 했다. 인격이 그 정도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한국당이 집권당이 되고 싶다면 정치용어부터 바뀌어야 한다. 요즘은 그런 막말을 초등학생도 사용하지 않는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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