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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생각
  • 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 승인 2019.08.1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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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전국매일신문 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밥을 먹다가 땅바닥에 흘린 밥을 잘 주워 먹지 않는 것은 더럽고 불결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밥이 제자리를 벗어나 이미 밥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바닷가에 버려진 흰 쌀밥이나, 남의 집 대문 앞에 뿌려진 제삿밥이 신성하게 느껴지지 않고 지저분하고 추하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다.

세상 모든 사물에는 제 있을 자리가 다 정해져 있다. 간장 종지에 설렁탕을 담지 않고, 설렁탕 뚝배기에 간장을 담지 않는다. 버섯이 아무리 고와도 화분에 기르지 않는다. 인간도 자기 인생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인간이라면 그 자리를 소중히 여기고, 제대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내 마음속에 있어야지, 다른 인간이나 짐승의 마음속에 있으면 내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자리에서 분별 있게 책임을 다하고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필자는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나를 진정으로 염려해주었던 분들이 자주 내게 들려주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다. 웬만하면 눈 질끈 감고 살아라.” 이 말 속에는 오랜 세월 세속적 처세를 통해 근근이 눈치 보며 살 수밖에 없었던 생활인들의 통계학적 지혜(?)가 잘 담겨 있다.

그 지혜를 내 식으로 말하자면 표현의 회피 정도가 되겠다. 나는 이 표현 회피 현상이야말로 생활인들의 가장 유력한 생존본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표현의 회피를 통해서 개인들의 삶은 더욱 옥죄어간다는 게 이 사회의 기이한 구조다. 가령 비리로 얼룩진 어느 분규사학에 표현의 회피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치자.

표현 회피를 추구하는 사람은 마음을 비우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대체로 합리적인데, 어떤 것이 분명히 인간다우며 아름다운 삶인지는 분명하다.

표현의 자유에 기꺼이 참여하는 자의 삶이 그러하다. 그러나 자유에는 제도가 보호해줄 수 없는 지극히 내면적인 고통이 따른다. 그렇다고 해서 표현 회피를 선택한 자가 쾌적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자유라는 이름을 듣기만 해도 내 가슴은 고동친다. 부자유가 가져다 줄 비만보다 나는 자유를 찾음으로써 얻게 되는 강골의 마른 몸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표현의 자유라는 말 역시 좋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제의 가장 소중한 덕목이 표현의 자유 아닌가. 그러나 김수영이 어떤 시에서 쓴 것처럼 자유에는 얼마간 피 냄새가 섞여 있다.

그들의 정신은 인형처럼 타인의 입 모양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 움직임은 점점 동물 형상을 닮아가게 되고, 성정 또한 그렇게 변해 가는데, 그래서 얻게 되는 것이 밥통 속의 쌀 한줌일 것이다. 제도와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이 제도와 구조 역시 사람이 만든 것 아닌가. 회피보다는 자유의 욕망이 힘이 세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그렇게 믿고 싶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선택하는 편에 서고 싶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내가 표현 회피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기꺼이 경멸받아 마땅할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오히려 이 부분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구조를 근본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표현의 자유 쪽에 인센티브를 과감하게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이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해야 할 도리는 다하지 않은체 팔짱만 끼고 있는, 어른답지 않은 어른이 많은 우리 포항사회를 생각해 본다.

포항/박희경기자 (barkhg@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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