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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曺피노키오가면무도회공연’을 세 달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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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曺피노키오가면무도회공연’을 세 달간 지켜봤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19.10.24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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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이 땅에는 두 개의 조국이 존재했다. 하나는 대한민국을 지키자는 광화문 집회의 조국(祖國)이고, 다른 하나는 조 장관을 지키는 서초동 집회의 조국(曺國)이었다. 전자가 양심과 정의와 공정의 외침이라면 후자는 그 반대적 성격이었다.
 
그간 국론분열의 불씨로 작용했던 조국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퇴임의 변을 통해 “나는 검찰 개혁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하다.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개혁을 들먹였지만 개혁은 그가 입에 담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국민이 진짜 바라는 것은 ‘가짜 조국’의 퇴장이 아니다. ‘진짜 조국’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로 만드는 일이다. 그 답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도 나와 있다. 당시 국민에게 제시한 약속을 6가지로 추리면 이렇다.

첫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 둘째, 나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나의 국민이고, 오늘부터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셋째, 제왕적 권력을 나누어 낮은 권력자가 되겠다. 넷째,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다섯째, 나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겠다. 여섯째,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개혁의 개(改)는 ‘자기(己)를 친다(?)’는 뜻이고, 혁(革)은 ‘짐승의 껍질에서 털을 뽑고 무두질로 잘 다듬은 가죽’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개혁이란 자신을 때리고 껍질을 벗겨 새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남을 고치려 하기보다 자기를 고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이 가득한 세상에서 양 진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괴롭다. 가짜 정의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사는 진짜 정의로운 사람은 살맛이 없다. 가짜를 진짜로 여길 수 있는 이상한 지혜가 필요하다. 얄궂은 세상살이다.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귀게스의 반지(Gygis anulus)는 신통한 능력이 있었다. 반지를 한쪽으로 돌리면 반지를 낀 사람이 사라지고 다른 쪽으로 돌리면 사라진 사람이 나타났다. 한 목동이 번개 치고 천둥이 울리던 날, 한 시신의 손가락에 낀 반지를 얻었다.

대단한 행운이었다. 한데 이 발칙한 목동이 반지의 능력을 이용해 왕궁에 들어가 왕비에게 몹쓸 짓을 하고 왕을 죽이고 왕이 됐다. 여기서 질문. 남다른 힘이나 권력을 가지고도 타락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답은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대단한 힘을 가지면 탐욕과 교만을 자제할 수 없다”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인 부패를 부르듯, 남다른 능력이 있으면 남다른 타락을 몰고 오게 된다. ‘우리 사회와 국가에 정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회의적인 답을 던지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은 여론조사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가짜가 진짜를 구축(驅逐, 해로운 대상을 물리침)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데 혼란을 겪는 사람이 많고 아예 가짜가 진짜로 둔갑해 설쳐대는 세상이다.

정의가 허물어지면 가짜가 판친다. 정의가 상대적인 가치에 머물면 가짜가 진짜보다 더 힘을 발휘한다. 우리 사회가 큰 위기에 빠져있다. 정의가 수렁에서 뒹군다. 대통령에서부터 소시민에까지 거대한 싸움판에서 자신의 정의를 부르짖고 있는 그림을 봤다.

‘정의 게임’에 미친 듯이 몰입하는 장면에 흥분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로 게임의 재미가 반감됐지만 이 게임의 인기는 여전하다. 정의 게임에서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정의(正義)를 자기 입맛대로 정의(定義)하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배웠던 정의(正義)는 없다고 봐야 한다.

정의 게임을 보는 사람이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 즉 정의가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상대적인 정의로 무장해야 정의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자기 진영에서 목소리를 내면 정의가 되고 다른 진영의 목소리는 반드시 불의가 된다.

불한 진실이 가득한 세상에서 양 진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괴롭다. 가짜 정의를 강요하는 사회에 사는 진짜 정의로운 사람은 살맛이 없다. 가짜를 진짜로 여길 수 있는 이상한 지혜가 필요하다. 얄궂은 세상살이다.현재진행형인 조국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진 파문은 크다. 법에 관련된 행정을 총괄하는 중앙 행정 기관인 법무부를 맡았던 장관을 두고 법의 잣대를 대는 건 미루더라도 사회 정의나 공정을 허문 상황을 만든 장본인을 용서하기는 힘들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그럴싸하게 보이고 상황에 따라 바뀌는 정의가 더 힘을 쓰더라도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수용하지 못할 선이 있다. 이 선을 넘는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사회는 겉은 화려해도 속은 썩었다고 진단할 수 있다.

조국 사태를 단순히 진영 논리를 바닥에 깔고 여야가 싸우는 단순 게임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 귀게스의 반지를 끼고 음흉한 짓을 해도 남이 모른다고 생각하는 철없는 아이를 보는 일은 힘겹다. 손가락 반지를 돌리면 몸뚱이가 사라지는데 그 앞에서 사회 정의는 신기루일 수밖에 없다.

조국 사태가 한창일 때 양 진영에서는 많은 사람이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집회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였다고 볼 수 있다. 상대가 안 보이는데 상대를 인정하기가 힘들다. 위기에서 기회를 보고 기회에서 위기를 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국 사태를 정치적인 봉합만으로 결론을 내리면 희생의 대가는 너무 크다.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든 사태를 보면서 위기에서 지혜를 찾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맘대로 뒹군 정의를 그나마 단단한 기초 위에 올려야 한다. 이러려면 반지를 끼고 설쳐댄 사람들을 공동체에서 몰아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게 나라냐”는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다고 외쳤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면 무엇보다 진실이 중요하다. 철학자 니체는 “확신이 거짓말보다 훨씬 위험한 진실의 적”이라고 했다.

개혁의 개(改)는 ‘자기(己)를 친다(?)’는 뜻이고, 혁(革)은 ‘짐승의 껍질에서 털을 뽑고 무두질로 잘 다듬은 가죽’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개혁이란 자신을 때리고 껍질을 벗겨 새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남을 고치려 하기보다 자기를 고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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