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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기요금 누진제 미봉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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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기요금 누진제 미봉책에 불과하다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8.08.0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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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폐지하라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많은 국민이 주변국 일본의 사례까지 인용하며, 국민의 안전과 삶의 질에 대해 정부가 다시 살펴보기를 바라고 있다.
 
가정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을 견디기 위해서 개별 냉방기기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누진제로 인한 징벌적 전기요금이 냉방기기 사용에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특히, 영유아, 임산부, 노약자가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폭염의 주요 피해자가 되고 있다.
 
애초 누진제의 취지는 에너지 과소비를 막고, 전기를 많이 쓰는 부유층에 요금 부담을 더 함으로써 저소득층은 싼값에 전기를 쓰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전 보급 증가, 1인 가구 증가, 기후변화 등으로 전력 소비양상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에 그에 발맞춘 변화를 요구받아 2016년에 국민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했지만, 초열대야 현상으로 밤새 에어컨을 틀다 보니 전기요금에 대한 걱정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기록적인 최악의 폭염이 입추를 넘어도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폭염은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인정하듯 단순한 ‘무더위’가 아닌 국민생명과 재산까지 위협하는 ‘재난상황’이다.
 
이처럼 최근 기록적인 폭염으로 가정용 전기요금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폐지하는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박대출 국회의원(진주시갑)이 지난 7일, 혹서기(7월부터 8월까지)와 혹한기(1월부터 2월까지)에 주택용 전기요금의 누진제 적용을 제외하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폭염ㆍ혹한과 같은 재난 수준의 기상이변 시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는 것을 감안해 국민이 전기요금 절감 혜택을 폭넓게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발의됐다. 누진제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을 놓고 찬반양론이 팽팽한 상황에서, 누진제의 한시적 폐지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특징이다.
 
전기 사용량에 따라 전기요금 단가를 높이는 제도인 누진제는 당초 전기 과소비 억제와 저소득층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최근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면서, 누진제는 가정용 전기요금 부담 급증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갈수록 심해지는 폭염은 이제 변수가 아닌 매년 대비해야 할 국가적 과제로 남았다. 정부가 7일 뒤늦게 7월과 8월 두 달간 가정용 전기요금에 대해 가구당 평균 19.5% 인하하는 한시적 누진제 완화와 취약계층 냉방지원을 발표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의 자연재난에 태풍, 홍수, 황사 등은 포함돼 있지만 폭염은 제외돼 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한시적인 응급처방보다는 기상변화가 언제까지,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관측하고 대응전략을 세울 연구조직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국민과 기업들이 안심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매뉴얼’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것이 111년 만에 찾아온 올해의 기록적인 폭염사태가 주는 교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폐지나 개선을 요구하는 여론이 적지 않으므로 국민들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 개선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7일 브리핑에서 “여름철 요금 때문에 누진제를 바꾼다면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커질 수 있다”면서 “앞으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제도개편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치권에서조차 야당을 중심으로 가정용 전기요금에만 적용되는 누진제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거세지만 정부는 ‘전기요금 폭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전기가 모자르던 시절인 1974년에 도입된 제도를 45년째 버리지 못하는걸까. 에너지 컨설팅업체 에너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전력소비량은 534테라와트시(TWh)로 세계 7위의 전기 과소비 국가다. 매년 순위가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전력소비량 증가는 전력판매의 56.6%(2015년 기준)을 차지하는 산업용 영향이 큰 것이지, 13.6%에 불과한 가정용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누진제를 폐지하면 지금보다 전력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당장 누진제를 완화한 올 여름만 해도 전력수요가 170만~200만kW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예측했다. 정부가 탈원전(원자력발전소)을 선언한 상황에서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지금이라도 전력수급계획을 다시 짜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누진제가 있어야 전기요금 폭탄으로 짭짤한 수익을 낼 수 있는 한국전력은 누진제가 사라지면 기댈 곳이 없어진다.

가뜩이나 원전 가동률이 하락해 올 상반기 적자에 시달렸던 한전의 실적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올 여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앞으로도 폭염·한파 등 이상기후가 지속되면 전기 사용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전기요금 걱정 없이 에어컨 한번 실컷 틀어보는게 소원’이라는 국민들의 볼멘소리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되풀이 될 것이다.정부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폐지하라는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
 
 ‘올 여름만 넘기고 보자’라는 생각으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의 자연재난에 태풍, 홍수, 황사 등은 포함돼 있지만 폭염은 제외돼 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한시적인 응급처방보다는 기상변화가 언제까지,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관측하고 대응전략을 세울 연구조직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국민과 기업들이 안심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매뉴얼’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것이 111년 만에 찾아온 올해의 기록적인 폭염사태가 주는 교훈이다.
 
정책과 제도는 시대에 따라 합리적으로 변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제때 반영해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한시적 누진제 완화 발표에도 국민들은 왜 여전히 분노하는지, 어떻게 해야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때다.
 
2017년 1월 10일 대선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은 재벌개혁 공약을 담은 연설을 한 적 있다. ‘재벌청산,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이라는 연설이었다. 당시 연설 말미에서 문 대통령은 재벌대기업에 대한 특혜와 관련해 전기요금 문제를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작년 ‘재벌청산,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 연설 이후 정확히 일 년이 되는 올해 1월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공정경제를 말하면서 재벌개혁과 함께 생활 속 적폐 근절도 함께 약속했다. 필자가 보기엔 전기요금 누진제야말로 생활 속 적폐다.
 
국가적으로 훨씬 더 급한 것이 있다. 탈원전 정책 기조가 타당한지, 지속 가능한지 재점검하는 일이다. 그래야 정책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국민 불안도 근본적으로 덜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럴 조짐은 전혀 없다. 답답하고 난감하다. 대통령 선풍기를 받을 길도, 에어컨을 맘대로 틀 길도 없는 서민들은 어찌해야 하나. 부채질이나 해야 할 모양이다. 참으로 혹독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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