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위기에 위기를 몰고 오는 형국이다.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의심 신고가 13일 만인 지난 6일 전북 김제시 소재 산란계 농장에서 접수된 가운데 구제역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AI와 구제역 등 겨울철 가축 전염병이 확산하면서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5년 초까지 소와 돼지, 닭, 오리 등 가축 살처분 보상금으로, 피해농가에 지급한 예산만 1조8500억 원이 넘는다.
이 중 AI와 구제역이 동시에 발생한 2011년의 살처분 보상금은 1조632억 원에 달한다.
2010년 11∼2011년 4월 당시 소와 돼지 등 가축 347만여 마리를 도살 처분하는 과정에서 살처분 보상금과 소독·방역비용, 농가 생계안정자금 등으로 총 2조7383억 원의 재정부담이 발생했다.
2010∼2011년 유행한 AI로 가금류 647만3000여 마리를 살처분했는데, 보상금으로 822억 원이 지급됐으며, 2012년, 2013년에는 가금티푸스, 결핵 등 다른 가축 질병에 따른 살처분 보상금으로 각 993억 원, 227억 원이 들었다.
AI는 지난 2003년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2∼3년 주기로 발생하다가 2014년 이후부터는 매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순 발생한 AI는 발생 50일 만에 전국 10개 시·도의 37개 시·군으로 확산된 가운데 지난달 초 현재 국내 전체 사육 가금류(1억6525만 마리)의 18.3%인 3033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이는 매일 60만 마리씩 살처분 된 것으로, 역대 최단 기간 내 최악의 피해 기록이다.
경제적 피해는 정부가 추산한 살처분 보상금 소요액만 2300억 원을 웃돌고, 농가 생계안정 자금과 육류·육가공업, 음식업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간접적인 기회손실 비용까지 모두 합치면 피해 규모가 1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처럼 역대 최악의 피해를 기록한 AI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지난 5일 충북 보은에 이어 7일 전북 정읍에서 구제역이 발생, 또 다른 축산재앙의 공포가 시작됐다.
정부의 허술한 방역체계와 농가의 소홀한 대처가 구제역 확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 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전북 정읍에서 발생 농가의 소 20마리를 검사했더니 고작 1마리만 항체가 형성돼 있어 항체 형성률이 5%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농가에서 사육 중이던 젖소 49마리는 도살·매몰됐다.
앞서, 올 처음 구제역이 발생한 충북 보은 농장 젖소들의 바이러스 항체 형성률도 20%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해당 농가에서 백신접종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농가에서는 정상적인 백신접종을 실시했다고 주장하는 등 백신 접종을 놓고 정부와 축산농가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또, 지난 2014년, 2015년 구제역 파동 발생 당시 백신이 제 효과를 내지 못해 불거졌던 ‘물백신’ 논란도 재연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구제역 백신 접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항체 형성률을 점검하는 정부 표본 조사도 엉망으로 드러나면서 정부의 허술한 방역체계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표본 수 자체가 적을 뿐 아니라 정부가 조사 결과만 믿고 안이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가 소의 구제역 바이러스 항체 형성률은 97.5%로 발효했으나 이는 지난해 소 사육 농가 9000 곳에서 2만8000마리만을 골라 조사했다고 한다. 전체 농가의 9% 정도로, 마릿수로는 1%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 현장에서 검사를 더 했기 때문에 이 정도였고, 원래 방역 지침은 고작 0.3%에 그쳤다는 것이다.
마조(馬祖) 도일선사(道一禪師)의 법사 중에 대양화상(大陽和尙)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당시 이(伊)선사라는 중이 대양선사에게 인사하러 온 적이 있었는데, 대양선사는 이 선자에게 “그대는 앞만 볼 줄 알고 뒤를 돌아볼 줄은 모르는구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선사는 “눈 위에 다시 서리를 더하는 말씀입니다(雪上加霜)”라고 답하자 대양선사는 “피차 마땅치 못 하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설상가상’은 내린 눈 위에 다시 서리가 내려 쌓인다는 뜻으로, 어려운 일이 거듭해 일어남을 비유한 한자 성어다.
흔히 ‘엎친 데 덮친 격’, ‘눈 위에 서리 친다’ 등으로 풀어 쓰며, 계속해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 많이 쓰는 표현이다.
또, 앞문의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에서 승냥이가 들어온다는 ‘전호후랑(前虎後狼)’이라는 성어도 있다. 하나의 재난을 피하자 또 다른 재난이 나타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국내에서 발생한 AI는 초동대처의 실패로 사상 최대 피해를 낳았으며, 이어 발생한 구제역은 엉터리 표본 조사만 믿고 현장을 외면하다가 구멍이 뚫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