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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 일상화 된 재난문자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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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 일상화 된 재난문자의 시대
  • 윤택훈 지방부장 속초담당
  • 승인 2019.05.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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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훈 지방부장 속초담당
<전국매일신문 윤택훈 지방부장 속초담당>

지난달 4일 강풍과 함께 한 순간에 발생한 강원지역의 산불피해는 막대한 결과를 초래했다. 강원 고성·속초, 강릉·동해, 인제 등에서 잇따라 발생한 산불에 따른 재산피해는 129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사유시설 피해는 주택 553동과 농업·축산·산림시설 195개소 등 약 303억원이고, 산림(11개소)과 문화관광(31개소)·군사(94개소)·상하수도(48개소) 등 공공시설 피해액은 988억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 산불로 소실된 산림은 진화 직후 추산된 500㏊의 5배가 넘는 2832㏊로 집계돼 토양의 급속한 산성화와 산불 잔해물들이 바다로 유입될 경우 2차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재난이 한 번 발생하면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면서 대형화되고 있지만 늘 소 잃고 외양간만 고치는 뒷북치는 대응책뿐이다. 대형 산불만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미세먼지, 지구 온난화 등의 여파로 한반도에는 폭염과 슈퍼태풍, 한파가 반복되면서 재난은 우리들 곁에 늘 존재하면서 괴롭히고 있다.

지난해 여름 폭염 및 열대야 발생 일수가 각각 31.5일, 17.7일로 1973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을 정도다. 이전 기록은 1994년의 31.1일, 17.7일이다.

지난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48명으로 2017년보다 4배 이상 많았다. 온열질환자 역시 4526명으로 역대 최고였다. 겨울한파가 극심했던 2017년에도 인명피해가 632명으로 전년(441명)보다 급증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9월 폭염과 한파를 자연재난에 포함시켜 관련 법(‘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자연재난은 시기와 모습을 가리지 않고 일상의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최악의 폭염이 지나자 여름 장마보다 심한 가을 폭우가 몰아닥쳤고, 4년 전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도 지난해 재발했다. 여기에 경주(발생 시기·2016년)와 포항(2017년)에서 잇따라 발생한 지진은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통상 자연재난은 취약계층인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등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힌다.

특히 경제적으로 소외된 저소득층 어린이와 독거노인 등은 한파나 폭염, 미세먼지에 노출되기 쉽다. 실제로 지난해 폭염으로 사망한 48명 중 35명(73%)이 60대 이상 고령자였다.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사전 준비가 쉽지 않다.

또 대규모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오는 자연재난이 불시에 닥쳤을 때 피해주민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기 십상이어서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매년 봄만 되면 공기가 건조하고 가물어 건조주의보 발령을 알리는 문자가 휴대폰에 자주 울리는 것은 일상이 돼 버렸다. 모든 사람이 매일 관심을 고 점검하는 미세먼지 농도나 여름 불볕더위, 가뭄·태풍·큰불과 같은 재난도 사실상 각각 하나씩 따져보면 현재의 문제가 과거보다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소위 전문가 중에는 요즘 사람들이 예전과 비교해 더 민감해진 것일 뿐 공기의 질은 더 나아졌고 기후는 원래 늘 변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거꾸로 시도 때도 없이 가뭄이다, 미세먼지가 심하다며 휴대전화를 울려대는 재난문자를 탓하기도 한다.사실 전 지구적인 차원의 기후변화라고 하면 개인적인 수준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고, 또 무엇이 원인인지 얘기하다 보면 자료 없이는 당장 답하기 어려운 끝없는 논쟁에 빠져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여러 재난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지금 이대로의 삶을 살아서는 곤란하다는 메시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재난은 대형 사건으로 터지기도 하지만, 외국까지 갔다 돌아온 생활쓰레기, 반복되는 가축 살처분, 미세 플라스틱이 섞여 나오는 국내산 천일염 등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재난은 일상을 위협하는 문제로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큰 재난 앞에서는 평소와 달리 이타심과 상호부조의 마음이 깨어나게 되며, 고통 속에서 서로 돕고 환대하는 문화가 생겨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볼 때 사회도 사회 나름이고 재난도 재난 나름이라 모든 재난이 공동체정신으로 이어진다고 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것과 같이 한 번의 큰 재난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재난이 연속되는 상황에서는 갑자기 각성이 일어나 서로 환대하기보다는 ‘내 한 몸만 잘 건사하기’로 이어지기가 더 쉽다.이렇게 재난이 일상화될수록 이를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과 고스란히 겪어내야 하는 사람 사이의 격차는 커진다.
 
당장 이번 산불에서도 대피방송을 들을 수 없는 장애인이나 홀로 대피가 어려운 노인들이 문제가 됐지만, 매일 먹고사는 문제가 재난이 된 상황에서는 격차가 점점 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렇게 문제가 심해지다 보면 격차 자체가 재앙이 되고,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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