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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17] 몽골고원의 야생화와 징기스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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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17] 몽골고원의 야생화와 징기스칸의 꿈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9.08.28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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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 징기스칸의 기마병들처럼 외부의 위기가 달려드는데도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이전투구를 벌이는 우리의 정치권은 국민 없는 자신들만의 영토싸움으로 해가 지고 있다.-
 
 
 
들녘이 가을꽃으로 물드는 우리와는달리 지금쯤 몽골 테를지국립공원의 야생화들이 이울고 있겠다. 지난달 초 아내와 함께 찾은 몽골은 야생화가 한창 피어 초원을 알록달록 물들였다.
 
에델바이스라고도 불리는 솜다리며, 진한보라색의 큰제비고깔꽃, 하얀 꽃송이가 별처럼 피어 매달린 피뿌리풀, 패랭이꽃, 쑥부쟁이, 용담, 와송, 민들레 등 이름 모를 수많은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고 있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어찌나 지천으로 피어나는지 떼는 발길이 조심스러웠지만 어쩌면 와송 몇 송이와 솜다리 서 너 개는 발에 밟혀 꺾였을 것이다.
 
몽골 초원의 꽃들은 6·7·8월에 한꺼번에 핀다. 1,500 미터쯤의 해발고도도 그렇지만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는 기온이 사실상 겨울이나 다름없기에 서둘러 피어야 한다. 6·7·8월이 봄 여름 가을이다. 사람으로 치면 조혼이다. 키마져 작아 아기 꽃처럼 앙증맞다.

어쩌면 몽골 초원에서 서둘러 핀 키 작은 꽃들은 7·8백 년 전쯤 ‘공녀’라는 이름으로 머나먼 몽골 땅에 끌려온 고려의 어린 여자아이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역사상 유일한 세계제국을 건설했던 징기스칸의 나라 몽골은 우리에게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유전자를 남긴 나라다. 우선 언어부터가 ‘우랄알타이어’로 우리와 한 계통일 뿐만 아니라 생김새 또한 거울을 보듯 우리와 닮았다.

고려의 왕들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100여 년 동안 몽골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고, 몽골은 그런 나라를 사위의 나라, 즉 부마국이라 불렀다.
 
몽골은 대신 처녀 아이를 바치라고 요구했다. ‘공녀’다. 고려의 왕들은 공녀 확보를 위해 금혼 령을 내리고 13세에서 16세 사이의 어린 여자아이 수 백여 명씩을 매년 몽골에 바쳤다. 그 어린 소녀들이 끌려간 몽골에서는 고려의 생활양식이 ‘고려풍’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했다.

그 때 떨어지지 않은 부모님의 손을 놓아야 했던 소녀들의 눈물이 몽골의 초원에서 고려풍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어린 소녀들이 몽골을 탈출하여 고향땅으로 돌아오면 ‘환향년’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지만 그녀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100만 평방키로 미터가 넘는 고비사막을 건너야 했고, 지금도 ‘죽을 고비’는 여전히 아픈 이름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고원에 핀 키 작은 꽃들의 향기는 바람 없이도 산을 넘어갔고, 낯익거나 낯설은 꽃들은 ‘무지개의 나라’라고 불리던 고려 땅에서 공녀로 끌려온 온 열 세살 여자아이의 눈물처럼 그렇게 피어났다.
 
몽골의 초원에서 어린 꽃을 보다 징기스칸이라고 불렸던 테무친에게 "당신이 이룬 세계제국은 무엇이며, 그 가치는 저 키 작은 꽃보다 더 향기로운가" 묻고 싶었다.

한 때는 지구의 가장 큰 제국을 형성했지만 몽골은 현재 외몽골과 내몽골로 나뉘어 있고, 몽골이라고 흔히 불리는 외몽골의 몽골인민공화국은 인구 300만 명의 국가가 됐다. 그중 전체국민의 1할인 30여 만 명이 한국을 다녀간 경험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취업비자를 이용한 방한이다.
 
테를지국립공원에서 우리는 징기스칸을 만났다. 수도 울란바토르로부터 50여 키로미터 떨어진 초원지역에 세워진 징기스칸의 기마동상은 몽골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의 동상답게 우람했다. 높이 60여 미터로 자유의 여신상보다 크고 높은 징기스칸의 은 기마동상은 햇볕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제국의 크기로 치면 알렉산드로스나 나폴레옹을 저 발밑에 두는 정복자 징기스칸은 어떤 생각으로 초라해진 자신의 제국을 바라보고 있을까.
 
‘추구해야 할 가치는 권력이나 땅의 크기가 아니라 꽃 한 송이 피어내는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이다’라고 할지 모르겠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및 경제 환경 등 국제정세가 녹록치 않다. 가까운 일본은 물론이고 미중간의 헤게모니 싸움은 갈수록 우리의 입지를 어렵게 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변수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다.

외부의 환경이 어렵다면 내부의 힘으로 극복해야 하지만 정치권은 모든 관심이 내년 총선으로 쏠리면서 오히려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마치 징기스칸의 기마병들처럼 외부의 위기가 달려드는데도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이전투구를 벌이는 우리의 정치권은 국민 없는 자신들만의 영토싸움으로 해가 지고 있다.

우매한 그들에게 거대한 징기스칸의 은 기마동상보다 몽골고원의 야생화가 더 아름다운 이유를 국민들이 가르쳐주어야 할 때다. 가르침은 누가 국민을 공녀로 삼아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는지 똑똑히 기억하여 그들이 기다리는 내년 총선에서 심판하는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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