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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숨 가빴던 한 해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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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숨 가빴던 한 해를 보내며
  • 최재혁기자
  • 승인 2019.12.12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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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유난히 길게 느껴진 한 해였다. 그만큼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얘기다. 하긴 모두 곧 잊힐 것이다. 삶은 늘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각도에서 보면 모든 것들이 무상하게 보이기도 한다.

“기원정사(祇園精舍) 무상당(無常堂)의 진혼의 종소리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이치를 일깨워주고, 석존의 입적을 지켜보던 사라 나무 꽃들은 성자필쇠(盛者必衰)의 섭리를 드러내 보여주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듯 제 세상 만난 양 으스대는 사람도 오래가지 못하니 권세란 한낱 봄밤의 꿈처럼 덧없기 그지없고, 아무리 용맹해도 결국은 죽고 마니 사람의 목숨이란 바람에 흩날리는 티끌처럼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 오찬욱 옮김

일본 고전 '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의 낭랑한 사장(詞章)이 저절로 나온다. 그렇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삶은 덧없다.기원정사의 종소리는 제행무상을 말한다지만, 그래도 삶은 나아간다. 그래서 해마다 떠올려도 어릴 적 교과서에서 읽은 윤동주의 시는 늘 새롭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이 힘찬 시가 우리 민족의 고난이 한층 더 깊어지기 시작한 1938년에 쓰여졌다는 사실은 늘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지금 눈 덮인 땅 속에선 민들레 씨들이 어김없이 찾아올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유달리 긴 것처럼 느껴진 한 해였다. 그렇게 느낀 것이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갖가지 내우에 외환까지 겹쳐 어두움이 가실 때 없는 한 해였다. 이처럼 많은 어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온 때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얼마나 더 오래 이 어두운 골짜기를 헤매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해도 곧 빠져나갈 희망이 보이면 그리 두렵지 않다. 그러나 지금의 총체적 난국은 언제나 되어야 그 수습의 가닥이 잡힐지 그저 막막하기만 한 실정이다. 경제만 려운 게 아니다. 온 사회가 심각한 갈등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느 듯 2019년 기해년(己亥年) 한 해의 끄트머리에 서 있다. 18일 후면 기해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2020년 경자년 (庚子年) 새해다. 2019년 새해 벽두에 직장인, 구직자, 자영업자 등 서민층은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2019년에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마고소양(麻姑搔痒)’과 ‘무사무려(無思無慮)’, ‘소원성취(所願成就)’를 올해 희망 사자성어로 꼽았었다.

이는 ‘마고할미가 긴 손톱으로 가려운 데를 긁어 주듯이’ 바라던 일이 뜻대로 잘 되고, 걱정이 없도록 나라를 이끌어주길 바라는 간절함이기도 했다. 2018년에 서민층이 삶이 얼마나 힘들었고, 불안했으면 이같은 희망을 꼽았을까 하는 생각에 안스러움이 앞섰다.2019년이 저물고 있는 시점에 소박했던 서민의 바람이 조금이나마 이뤄졌느냐는 질문을 던지면 대다수가 ‘아니오’라고 답한다.

오히려 전년도 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서민경제는 더 나빠졌고, 국내외적으로 처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올해는 그 어느 해 보다 분노·실망·절망·한탄·후회·갈등·허탈감·자괴감·불안감이 더 많았던 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심지어 배신감 마저 들었던 해 였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갈등은 국민을 분열시켰고, 그것도 극단적이며 적대적으로 분열시켰다. 이 때문에 지금 국민은 ‘내편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극단적 논리에 빠졌고, 불신이 극에 달한다. 정치권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며, 권력 유지 및 쟁취에 악용하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이제 분노로 바뀌었다. 청와대와 정부 역시 민생경제에 대해 ‘나아지고 있는 중이며, 엄중한 상황이 아니다’며 현실과 먼 이야기를 쏟아낸다.

청년과 자영업자, 직장인들의 한숨과 한탄이 이제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대통령 마저도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며 현실을 아전인수한다. 상승·하락하는 수준이 아니라 폭등(서울집값)·폭락(지방집값) 수준이다. 이를 통계상 평균치로 해 안정화로 치부하는 것은 통계적 오류를 교묘히 정당화하는 것이다특권층의 자가당착적 불공정 행위는 분노를 넘어 배신감까지 들게 했다.

반면 서민들은 스스로의 무능함에 대해 한탄과 함께 자괴감에 빠지게 했다. 고유정·안인득 사건 등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불거져 사회 불안감은 더 고조됐다. 그리고 남북 갈등이 다시 높아졌고, 한미일 동맹 관계도 예전 같지 않다. 동맹국들이 자국 이익우선주의에 빠져 우리나라를 더 압박한다.

국제관계도 살얼음을 걷는 듯 불안하고, 위태위태하기만 하다. 국제관계가 더 불안해졌다. 지금 국내외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 역대 왕조가 멸망했던 시대상황과 흡사하다. 멸망했던 당시 지배층은 권력싸움으로 내부 분열이 극심했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지배층에 대한 원성이 높았다. 주변 국가들은 침략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국가 존립 마저 위태했음에도 지배층은 권력욕에만 빠져있었다. 그 망국적 상황이 시대를 거슬려 지금 재연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딛고 새롭게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는 서민의 살림살이가 좀 더 나아지고, 안전한 나라가 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었다. 특히 2019년은 성과의 가속도를 낼 수 있는 2년차였기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기해년이 저무는 지금까지도 정치권은 쌈박질에만 몰두하고 있고, 경제는 무너지고 있고, 범죄와 비리가 판을 쳤다. 경제난과 사회불안이 더 고조된 2019년이었다. 총체적 위기 속에서 서민들은 참 고단하게 보냈다. 서민들은 2020년 경자년에도 또 ‘마고소양(麻姑搔痒)’, ‘무사무려(無思無慮)’, ‘소원성취(所願成就)’ 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2020년 새해부터는 서민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가오는 새해는 좀더 밝고 편안했으면 좋겠다. 나날이 쪼그라들어 가는 서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질 수 있는 기적을 바라고 싶다.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전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정부를 보고 싶다. 길고 어두운 한 해를 보내면서 간절히 빌어보는 소망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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