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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14] ‘1골’이 목표였던 국가대표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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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14] ‘1골’이 목표였던 국가대표팀의 눈물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9.07.24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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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 결과가 뻔한데도 하나로 뭉쳐서 최선을 다한 모습이야 말로 1등 못지않은 아름다움이다. 꼴찌의 성적을 거둔 대한민국 여자 수구 국가대표팀은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남긴 아름다운 기록의 당사자들이다.-
 
지난 22일 광주시 광산구 남부대학교 수구 경기장에서 한국과 쿠바의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여자 수구 15·16위전이 열렸다. 여기서 이기는 팀이 이번 대회의 꼴찌를 면하는 경기다.

하지만 한국의 목표는 꼴찌를 면하는 것에 둘 형편이 못됐다. 승리가 목표가 아니라 ‘1골’이 간절한 목표가 된 경기였다. 결과는 0대 30.

한 골도 넣지 못했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아 꼴찌를 차지했지만 대한민국 여자 수구팀은 우승팀 같은 대우를 받았다. 선수들은 부둥켜안고 펑펑 눈물을 쏟아냈고 관중석에서는 힘찬 박수가 쏟아졌다. 지역신문은 앞 다퉈 1면 머리기사와 사설로 그들에게 격려를 보냈다. 

비록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졌지만 그들이 보여준 순간순간의 최선은 ‘꼴찌에게 박수를’보내기에 충분했다.

사실상 한국 여자 수구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처음 선 보인 사상 첫 국가대표팀이었다. 말이 국가 대표팀이지 급조된 국가대표들이었다.

개최국 자격으로 대회 출전권을 얻게 되자 대한수영연맹은 부랴부랴 지난 5월 말 경영선수들로 수구 대표팀을 꾸렸다. 중학생 2명, 고교생 9명, 대학생과 일반 부 각 1명이 포함됐다. 전문 수구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는 국가대표팀이었다.

급조된 탓이 훈련 시간마저 턱없이 부족했다. 지난 6월 초에야 진천 선수촌에서 훈련을 시작해 불과 40여일의 훈련을 마친 뒤 전선에 투입됐다.

정해진 레인에서 홀로 기록과 싸우는 경영 선수로만 뛰었던 이들에게 서로 호흡을 맞추면서 상대방과 싸워야 하는 단체종목은 낯설고 멀기만 한 경기였다. 더구나 이들에게 공을 가지고 뺏고 빼앗기는 몸싸움은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육군을 급히 훈련시켜 해병대 명찰을 단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 한국 여자 수구대표팀은 애시 당초 비교자체가 무리였다.

오죽했으면 이번 대회에서 여자 수구 대표팀으로 뛴 고교생 선수인 경다슬은 “한 달을 연습하고 일반인이 세계선수권 대회에 나서는 것은 메시와 축구하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겠는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대표팀은 이번 대회의 목표를 ‘1승’이 아닌 ‘1골’로 잡았지만 ‘1골’도 쉽지 않았다.

대표팀은 한국 여자 수구 사상 최초의 공식 경기인 헝가리와의 조별 예선 1차전에서 0대 64라는 기록적인 패배를 맛보았다. 역사적인 ‘1골’의 감격은 1대 30으로 패한 러시아와의 2차전에서 나왔다.

첫 골을 넣는데 성공한 대표팀은 이후 캐나다와의 3차선에서 2대 22로 두 골을 넣었고,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경기에서는 23점차로 대패행진을 거듭했지만 세 골을 터트리는 기개를 보였다.

몇 차례의 경기에서 얻은 ‘1골’은 패배의 숫자가 아니라 가능성의 숫자가 됐다.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 여자 수구 국가대표팀의 성적은 5전 전패, 최하위인 16위였다.

‘1골’이 목표였던 꼴찌팀 대한민국의 대표팀은 이번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가를 보여줬다.

개인의 개별적 기록이 중요했던 이들이 단체의 한 구성원이 되어 서로 단합하는 모습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작금의 정치권이 느끼고 깨우쳐야 할 대목이다.

경기에서는 1등과 우승만이 박수를 받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꼴찌도 있다. 1등과 우승자의 눈물도 아름답지만 꼴찌의 눈물도 아름답다. 우리는 그동안 1등과 우승에만 너무 매달려 왔다. 결과가 뻔한데도 하나로 뭉쳐서 최선을 다한 모습이야 말로 1등 못지않은 아름다움이다. 꼴찌의 성적을 거둔 대한민국 여자 수구 국가대표팀은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남긴 아름다운 기록의 당사자들이다.

2019 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지난 12일 시작돼 오는 28일까지의 일정으로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일본 아베총리의 도발로 인해 광주의 스포츠대전이 빛을 잃고 있지만 194개국 2,639명 출전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광주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어느 나라의 누군가나 어느 팀은 우승의 감격과 영광을 누릴 테고, 누군가나 어느 팀은 패배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하지만 1등의 영광이나 꼴찌의 눈물이나 모두 최선의 결과라면 그들에게 주어지는 박수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아낌없는 박수를 받을 만한 꼴찌를 민주 인권의 도시인 광주에서 더 많이 보았으면 한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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