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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총기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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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총기규제’
  • 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9.08.0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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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정선담당>

1981년 3월30일 도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시내 한 호텔을 나서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 25세 정신이상자가 대통령을 향해 쏜 총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가슴에 총을 맞았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옆에 서 있던 제임스 브래디 백악관 대변인이 머리를 맞았다. 그가 목숨을 건진 건 기적이었다. 대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신체 일부가 마비돼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는 희생이 뒤따랐다.

브래디의 부인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총기휴대 금지 운동을 벌였다. ‘브래디 총기 규제법’이 만들어진 계기다. 그러나 입법까지는 13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그 사이 저격범은 정신이상으로 무죄를 선고받고 병원에 수용됐다. 민주당과 달리 공화당이 입법에 반대했다. 수정헌법 2조에 국민의 총기보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만큼 개별법으로 이를 제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중 하나가 총기 규제에 대한 미지근한 여론이다. 잊을 만하면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에서 총기문화는 국가형성 초기부터 밀접한 역사를 갖고 있다. 총은 서부 개척 과정에서 맹수와의 사투, 인디언들과는 목숨을 건 일합 등의 과정에서 필수품이었다. 공권력이 부재했던 당시에 총기는 삶을 연명할 ‘최후의 수단’이었다. 법적으로 미국 수정헌법 제2조도 무장의 권리를 넘어 민병대 존재까지 보장한다. 총기는 ‘스스로 역사를 개척했다’는 미국인의 자존심이 담겨 있다.
 
총기 문화 확산의 계기가 된 것은 남북전쟁이었다. 1861년부터 4년 동안 남북의 치열한 접전이 계속되면서 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참전 군인들은 총기 사용에 대해 조직적인 훈련을 받았다. 당시 총기산업은 규모와 기술면에서 크게 성장해 대량생산 체제로 돌입했다.

총은 남북 양측 모두에게 정체성과 투쟁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됐다. 식민지 미국인들을 하나의 국가, 하나의 국민으로 만든 것이 독립혁명이었다면, 총은 분열된 남북을 하나의 국가로 다시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전쟁이 끝난 후 병사들은 총을 가지고 귀향하면서 총기 문화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총기 확산은 부작용도 많다. 링컨·케네디 대통령,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자의 총탄에 쓰러졌으며, 레이건 대통령도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나 대학가, 심지어 초등학교에서도 충격적인 총기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백주 대낮에도 총을 든 범인과 경찰의 총격전이 벌어진다. 총을 든 범인과 대적하기 위해 경찰도 완전 무장한 상태로 출동한다.

미국은 왜 우리나라처럼 총기 소유를 금지하지 못하는 걸까. 자살사이트가 사회문제가 되면 바로 규제해 폐쇄조치하고 악플 피해가 잇따르면 곧 인터넷실명제 법안 등을 만들어 대응하는 시스템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총기 소유를 금지한다고 해서 총기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꺼번에 수십명을 숨지게 하는 대형 참사만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미국 정치권과 총기업자들의 커넥션 탓이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실제 미국총기협회(NRA)의 정치적 영향력은 상상 외로 막강하다. 그들 사고방식에는 우리와 전혀 다른 DNA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총기 없는 미국 사회를 기대하는 건 김치 없는 한국 사회를 상상하는 것과 같다는 느낌이었다.

총기 사건에 무덤덤한 여론을 지적하자 그들은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들은 총기는 누구나 지닐 수 있는 것이라면서 중학생 아들에게도 사격을 가르친다고 했다. 총기를 잘못 쓰는 사람의 문제일 뿐 총기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논리였다. 미국인 3명 중 2명이 총기사건을 사회문제와 관련 없는 별개 사건으로 인식한다는 퓨리서치 여론조사 결과는 사실이었다.

미국 수정헌법에서 총기 소유 권리는 표현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를 규정한 1조에 뒤이어 2조에 올라 있다. 미국 건국 과정에서 총기가 필수적이었던 역사적 배경과 관련 있다. 총으로 가족 목숨을 지켜야 했고 영국에 맞서 독립할 때 자기 총을 들고 나섰다. 총기 소유는 그만큼 미국인 사고방식에 뿌리깊게 권리로서 자리 잡혀 있다. 미국인들 생각이 어느 날 갑자기 바뀔 리 없다. 미국 내에서도 총기 규제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토론 문화를 자랑하는 미국 사회가 어떻게 합의를 이루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지 지켜볼 일이다.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3일 텍사스 엘패소의 쇼핑몰 총기 난사사건(20명 사망)을 비롯해 최근 미국에서 잇따라 총격사건이 다시 발생하고 있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것이어서 사실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기소지를 완전히 금지시키지 못하는 것이 의아스럽다. 미국총기협회 등의 정치권 로비를 주 이유로 들지만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미국인 특유의 총기 DNA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앞서 지난 4월엔 캘리포니아주 포웨이의 유대교회당에서 백인이 총을 쐈다. 켄터키주 제퍼슨타운에서는 지난해 10월 흑인 2명이 50대 백인 남성의 총에 맞았다. 2017년 5월에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기차 안에서 백인 남성이 무슬림 승객들을 흉기로 찔렀다.
 
트럼프 대통령 책임론으로 번지는 건 예상됐던 일이다. 강경한 반이민정책을 펴면서 이민자 혐오와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는 5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트럼프는 테러리즘을 부추기는 백인민족주의자’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버락 오바마의 백악관도 폭력적인 백인 우월주의에 맞서 싸우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는 백인민족주의의 언어를 주류 정치에 도입하면서 그에 맞서려던 전임자의 노력까지 되돌려놨다”고 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공화당은 자신들이 추진하던 세금 삭감 의제의 인기가 떨어지자 인종주의에 호소해왔다”며 “그들은 체계적인 테러의 원동력이 됐다”고 비판했다.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총기규제나 인종주의적 편견을 극복하는 문제엔 관심이 없다. 그는 지난 5일 대국민 성명에서 “한 목소리로 인종주의와 편견, 백인우월주의를 비난해야 한다”며 “미국에서 증오가 발붙일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비디오게임과 정신질환에 책임을 돌렸다. 포괄적이교 실효성 있는 총기 규제에는 담 쌓은 채, 위험 인물들에 한해서만 총기 소지를 규제하는 ‘붉은깃발법’을 만들자고 했다. 앞으로 총기소지가 계속 유지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정선/ 최재혁기자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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