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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텃밭 하나를 갖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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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텃밭 하나를 갖고 살아가고 싶다
  • 박희경기자
  • 승인 2019.11.12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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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오곡백과가 이삭마다 가지마다 출렁이고 고추잠자리 황혼의 하늘가를 맴도는 평화로움을 그리워하는 이 가을에, 산과 들에는 서서히 최후의 날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빛과 색으로 화려한 종말을 맞이하는 나뭇잎을 떠올려보자.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 인생도 그렇다. 아주 아름답고 멋지게 그날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마음에 텃밭 하나쯤은 가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거기에 사랑도 심고, 이해도 심고, 애증(愛憎)으로 얼룩진 내 마음도 내려놓는 씨앗을 뿌리고 싶다.

그 텃밭에 열매가 영그는 날, 내 텃밭에 빛과 색깔이 화려한 야생화가 피고, 채소며 과일 들이 주렁주렁 열리는 텃밭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내 텃밭은 얻는 것보다 나누어 주는 텃밭으로 가꿔갈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다 멋지고 행복하게 사는 것만을 추구하고, 온갖 욕심으로 찌든 삶을 살아왔기에 그렇다.

그러나 삶은 곳곳에 숨어있는 우리가 몰랐던 아름다움으로 더욱 더 소중해지고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왜, 그것을 모르고 살았을까. 바닷가의 조개껍질이 우리가 간직하고 싶은 수예작품이 되고, 메마른 날의 한줄기 빗줄기가 신이 창조한 우주를 신비를 엿볼 수 있는 날에, 누군가의 미소로 우리를 인류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준다.

평범한 것들이 지닌 신비로움에 감탄하기까지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우리는 이제 볼 수 있다. 인생을 살아 본 후에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삶의 교향악을 느끼면서도 젊은 시절에 느꼈던 것과는 다른 의미의 감정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삶에 대한 감흥이 찾아오지만, 종종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해 본다. 좀 더 젊었을 때, 더 많은 것을 채우고 거둬들이는 것에 연연했지만, 조금은 비우는 것에 마음을 썼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무언가 잃었을 때 더 많은 것을 깨닫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무언가 부족할 때 비로소 삶의 본능이 우리 안에서 고개를 들기 때문이리라.

긴 시간동안 놓쳐왔던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그들이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삶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순간도 함부로 살아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삶의 맛을 음미해야 한다. 그리고 순간으로 다가오는 삶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들여 마셔야 한다.

바쁘게 몰아치는 현대사회에서 삶의 맛을 음미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 사치며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해 잠시 멈추기에는 너무나도 일상이 바쁘게 돌아간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정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우리가 부딪치는 모든 상실과 한계 속에 보다 깊은 삶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이 있다.

호흡이 힘겨워질 때 비로소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남아 있는 나날이 줄어드는 것을 바라보면 하루하루가 모험의 연속인지 모른다. 이제 나는 지난날을 돌아본다. 추억 속에 오랜 세월을 뛰고, 모으고, 가꾸고 또 버렸던 그 시간 속에 내가 외면했던 것들을 주워 모은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사는 동안 내 삶의 많은 것을 잃었다. 그 두려움 때문에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 짐이 될 수 있다. 청춘을 돌릴 수는 없다. 아무리 외쳐도 청춘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 마지막 잎이 떨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11월은 그렇게 가을을 불러오고 있다. 내 인생도 가을의 낙엽처럼 아름답게 떨어질 준비를 해야 한다. 저 마지막 불타는 정열을 쏟아내듯 붉게 더 붉게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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