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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萬波息笛)의 호국정신, 서해수호의 날로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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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萬波息笛)의 호국정신, 서해수호의 날로 계승하자
  •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
  • 승인 2017.03.26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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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를 창업하고 수성한 문무왕과 신문왕은 민족 호국사상의 원류를 본격적으로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와 관련해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는 유명한 고사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피리 하나로 세상의 모든 파도(국난, 재난 등)를 불식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고사(古事)에 담긴 호국정신만은 오늘날에도 크게 본받음직하다. 특히 이러한 정신을 계승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특정한 계기(契機)를 만드는 것이 절실한데, 지난 24일 서해수호의 날은 활용 여하에 따라 이러한 계기가 됨직하다. 이에 아래에서는 양자의 공유점인 ‘호국정신’을 매개로 현대판 만파식적의 기적을 구현하는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우선 삼국유사에 실린 만파식적 고사는 다음과 같다. 통일신라의 정신적 통합을 위해 고심하던 신문왕에게, 동해의 호국용이 된 문무왕과 천계의 신이 된 김유신이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남[고장난명(孤掌難鳴)]을 강조하며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신문왕이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서 불자 신라의 모든 어려움이 해결(외적의 후퇴, 병의 치유, 가뭄의 해소, 파도의 안정 등)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신문왕은 이 피리를 만파식적이라 명명하고 국보로 삼아, 문무왕을 위한 대왕암 및 감은사와 함께 신라인들에게 호국의지를 상기하는 상징물로 기능하게끔 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고사의 실현가능성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내용을 굳이 널리 알리고 기록했던 당시 위정자들의 의도이다. 문무왕에 의해 삼국은 통일되었지만 700년이나 분열되어 있던 백제와 고구려 유민을 온전히 신라의 국민으로 만들고, 이러한 통일신라의 역설적인 분열상에 편승하려는 외세의 시도를 제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신문왕은 군사제도(9서당)와 신분제도(골품제)에 망국의 유민을 포섭하는 등 다양한 통합 정책을 펼쳤는데, 감은사와 대왕암 등 호국적 상징물과 만파식적의 고사는 이러한 통합정책의 정신적 측면을 담당한 일종의 상징정책이자 오늘날의 ‘비군사적(정신적) 대비(안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만파식적에 담긴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민심을 통합해 굳건한 신라를 만들려는 호국사상과 평화를 갈망하는 신라인의 정신은 오늘날 본받아 마땅한 고귀한 유산이다. 이를 계승하는 일의 중요성은 일제강점기와 같이 호국의식의 부재로 야기된 아픈 역사를 상기해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시의적절한, 더 나아가서는 상시적 호국정신을 구현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전 국민의 책무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앞서 언급한 서해수호의 날은 법으로 정한 정부 기념일로써 국가의 영속성을 제고를 위한 국민정신 함양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상징 기제이다.


구체적으로 서해수호의 날은 제1~2차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 등 정전협정 이후 서해 북방한계선 부근의 남침을 격퇴한 서해수호 호국영웅들의 헌신을 기리고, 이들의 호국정신을 하나 된 대한민국의 구현으로 승화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된 법정 기념일이다. 서해수호의 역사와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행위는 그 자체로 국민 안보의식 고취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서해수호의 호국영웅에 대한 존경과 추모는 대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국가유공자에 대한 보훈이자 집단기억이라는 측면에서, 이에 공감할 수 없는 외부 집단과 분리된 대한국인이라는 공동체 의식 함양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피리는 존재할 수 없는 기적의 영역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신문왕은 ‘만파식적’이라는 이름의 피리를 국보로 삼고 이를 대대로 중시하게 한 것은 만파식적 고사 속에 담긴 ‘통합’과 ‘호국’의 메시지를 만백성에게 전하여, 명실상부한 하나 된 통일신라를 만들어나가기 위함이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천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이 서해수호의 날을 법정 기념일로 제정하여 서해수호의 호국영웅들을 국가 차원에서 기리는 것은 미래 대한민국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국토수호의 중요성과, 그 전제조건으로서의 국론통합이 공히 이루어져야 함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첨언하자면 세상의 모든 어려움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집단 혹은 국가에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생존과 분열 문제를 극복하는 데 단초가 될 수 있는 피리(기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 외형과 관계없이 문자 그대로의 ‘만파식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서해수호의 날을 대한민국의 영속성을 제고하고 만연한 분열을 극복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만파식적 고사의 기적을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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