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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보훈청 기고) 보훈섬김이로서 10년차를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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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보훈청 기고) 보훈섬김이로서 10년차를 맞이하며
  • 승인 2017.04.0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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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섬김이 오현정

 

혹시 보훈섬김이를 아시나요?

되돌아보니 제가 걸어온 보훈섬김이로서의 길은 꽃길만은 아니었다.

 

눈 오고 비 오던 날 언덕길 오른 만큼 미끄러져 내려와 발목 접골되던 날도 떠오

 

르고, 찜통무더위와 싸우며 오르고 올라 방문했을 때, 오늘같이 더운 날 왜 왔냐고 날 위한 역정 아닌 사랑 가득했던 말씀도 떠올라, 지난 10년을 돌아보는데 감회를 새롭게 한다. 꽃길은 아니었어도 꽃길로 가는 디딤돌 다지기에 어언 10년이란 세월과 타협하며 “오늘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처음 보훈 섬김이로서 명찰을 달고 방문 했던 6․25참전유공자 박000 어르신이 떠오른다. 온몸이 마비되어 자유롭지 못하지만 천정에 컴퓨터를 매달고 손에 젓가락을 잡아매고 한자 한자 컴퓨터를 두드려가던 그분이 있었다. 다음 방문 일을 못 기다려 전화했노라고 하시던 그분, 방문 시 나누던 대화가 한편이 시가 되어 읊어주시던 님. 하루 더 살기를 욕심내기보다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누리던 그분은 지금뿐이란 생각으로 일분일초에 남은 생을 펼치는 모습에서, 내일이 있음을 알고 미루던 내게, 현재 지금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시다.

 

이름 석 자를 쓸 수 없어 매사에 자신은 못 배웠노라고 한탄만 하시던 분도 생각난다.

이름을 쓸 줄 몰라 보훈섬김이 케어일지의 대상자 서명 란에 늘 도장을 찍어 주신 던 분께, 하루하루 이름 석 자를 쓸 수 있게 써내려가던 날들도 떠오르며 미소 짓게 한다. 처음엔 이 나이에 배워서 뭐해 라고 소극적이었으나 글을 모른다는 열등감으로 이웃관계는 물론 매사에 자신감을 잃고 사시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이름 석 자 쓸 수 있게 하자는 목표였다. 처음엔 이름 석 자 써드리고 따라 쓰게 했다. 아니 그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당당하게 이름 석 자를 안보고 썼을 때의 감동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세파와 싸워온 분이라 감정표현이 서툴다고 늘 말씀하셨지만, 남창동 집 앞을 계절마다 아름답게 가꾸던 그분은 분명 표현 못한 감정들을 애써 꽃길 가꾸며 보는 이들에게 전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때론 주택문제로 투덜대는 분도 계시고, 얼굴 한번 못 보는 데 서류상 자식이 있어서 도움 못 받는다는 어르신들의 푸념어린 말씀도 들으면서 마음 아플 때도 있다. 욕심 같아서는 “금방 어떻게 해드릴 게요.”라고 답을 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젊다고 여겨졌던 월남전 참전유공자분들도 어느덧 70대 중반이다. 특히 6․25참전유공자분들은 대부분 90세를 바라보다보니, 뵙는 날이 아닌데 전화가 오면 가슴이 철렁한다. 혹시 무슨 일이...자꾸 최악의 경우만 떠올리게 된다.

섬김이로서 하는 가사, 간병, 병원 및 외출동행 등등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때론 할 수 없는 게 많구나 하는 자괴감을 맛볼 때도 많음을 고백한다.

 

찾아가는 서비스 즉 가사 일은 물론 반찬서비스, 문화공연에도 초대하여 영화 및 음악회 뮤지컬 전통극 공연을 보며 한바탕 웃음으로 시름을 달래보는 시간을 마련해드리고, 마음은 늘 있지만 좀처럼 하기 힘든 여행, 기차 및 관광버스를 타고 조국의 산하를 돌아보며 지난날의 회포를 풀어 드리는 시간도 함께하다 보면 어느덧 한 해가 저물고 새해를 맞는다.

 

시간이 아무리 흐르고 흘러도, 보훈 섬김이로서 우리 유공자 어르신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엔, 오늘의 우리가 있음엔 그분들의 값진 희생이 있었음을 잊지 않기에 좀 더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의 배달부로 다가가보고자 한다.

 

보훈섬김이 10년차, 지난 시간을 되새겨보며, 새로 맞는 시간들에게 초심을 잃지 말자고 거듭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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