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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크리스마스는 가난한 이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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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크리스마스는 가난한 이웃과 함께'
  • 오철곤 여수 한영대학 평생교육원장
  • 승인 2018.12.17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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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과 함께 들이닥친 혹독한 한파 속에서도 성탄절이 다가옴을 알리는 크리스마스캐롤 속에 자선남비 종소리가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오늘은 해마다 찾아오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성스러운 탄생이 있던 날, 즉 예수님의 생일을 의미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서 소외되고 억눌렸던 백성들, 차별받던 여인들, 신분과 종교에 의해 배제된 사람들, 고아와 과부라고해서 멸시받던 사람들 편에서 ‘보편적 인류애’를 우리의 문화 속에 녹여준 사실을 기념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펼치신 이 보편적 인류애는 단지 경제적이거나,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뿐 아니라 부유하거나 권력을 차지하고 있어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기회를 주신 의미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용서와 화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마스와 함께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산타클로스’다. 산타클로스라는 말은 4세기경 소아시아 지방 리키아의 파타라시에서 태어난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몰래 도와주곤 했는데, 후에 대주교가 돼서도 남몰래 많은 사람들을 도왔으며, 그의 이런 선행에서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생겨났다고 한다. 로마 카톨릭에서 그를 성인으로 인정해 ‘상투스 니콜라스’라고 했으며, 현대 영어식 발음으로 ‘산타클로스’가 됐다고 한다.

 

 산타클로스의 빨간 옷은 코카콜라의 광고에서 기인하며, 오늘날의 빨간 옷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한다. 썰매를 끄는 루돌프도 몽고메리워드 백화점의 광고 담당자가 수줍음이 많아서 놀림을 받던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이미지를 만들었지만, 상업성을 떠나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게 됐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의 또 다른 상징으로 ‘스크루지 영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생김새부터 인색하기 짝이 없는 그는 지독한 자린고비였다. 충혈된 눈, 얄팍한 입술 그리고 굽은 매부리코를 가진 그에게 인정이라곤 티끌만큼도 없었다.

오죽하면 거지들도 스크루지 에게는 동전 한 닢 구걸하지 않았을까? 그러던 그가 7년 전 죽은 한 젊은이의 유령을 만나,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베풀지 못했는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이들에게 곧잘 들려주는 이야기로 자리 잡았다. 크리스마스 본연의 ‘나눔’이라는 교훈을 담고 있어 이 소설은 크리스마스의 철학으로 불린다. 실제 이 소설 덕에 영국인들이 소소한 선물들을 나누며 기쁘게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전통을 갖게 됐다.

 

지독한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까지 변화시킨, 소중한 사람들과 소박하게나마 함께 기쁨을 나누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전통이 상업화의 물결에 변질되고 있음은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거리의 불빛들과 번쩍거리는 장식들은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상업성으로 변질된 지 오래이다.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인들의 낭비벽을 자극하는 날이 됐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문득 크리스마스가 상업화의 바람을 넘지 못한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돼 안타깝기만하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와 함께 ‘크리스마스데이’로 인식되고, 단순한 축제일로 의미가 퇴색 돼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사랑과 나눔’, ‘배려와 희생’을 담는 이 날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는 없을까?

 

피상적인 화려함 뒤에 가려진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 있는 아기를 한 번쯤 기억해보는 건 어떨까? 뚱뚱하고 온화한 산타클로스가 아파트의 비밀번호를 몰라 선물을 못주고 갈까봐 걱정하는 이 땅의 착한 아이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은 그래도 위안이 된다.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푼 소아시아의 성자, 성 니콜라스의 선행을 다시금 생각하며, 이번 크리스마스는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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