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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독립 숨결 살아있는 영양군…평화·번영 ‘100년 염원’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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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독립 숨결 살아있는 영양군…평화·번영 ‘100년 염원’ 이끈다
  • 영양/ 김광원기자
  • 승인 2019.02.2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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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회복 운동 주변 지역 비해 더 활발…김도현·조헌영·남자현·엄순봉·권도인 등 대표적 활동
안동 임동 만세운동 주동 이강욱 ·홍종률·류동수, 영양에 들어와 만세시위 불 붙이는 계기 마련

 

영양 망미공원

 

경북 영양군, 3·1운동 정신 계승한 100주년 기념사업 계획

한국의 근대사는 열강의 침투와 이에 대한 대응의 역사로 점철된다. 중국에 대한 전통적인 사대주의 관계로 만족하고 다른 세계를 보는 새로운 정세에 대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없었다. 민첩하지 못한 대외정세에 대한 둔감함은 일제를 비롯한 열강들의 침략 야욕을 부추기는 결과가 되었으며, 본격적으로 무너지는 국권을 지키려는 노력과 잃어버린 국권을 찾기 위한 움직임으로 표출돼 왔다.

이런 움직임들 속에 1919년 한반도와 세계 각지의 하늘에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이 울린 3.1운동은 민족의 자주독립과 평화, 민주와 인권의 가치를 외친 선언이자 실천이었다. 3.1운동으로 분출된 민족의 역량은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져 항일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기에 3.1운동의 위상은 독립운동사에서 절대적이다.
 
■ 활발한 독립운동의 움직임을 보인 영양
영양인들이 펼친 독립운동도 이런 움직임과 다르지 않았다. 나라를 찾고자 했던 국권회복 운동은 주변 지역에 비해 오히려 더 활발했으며, 김도현, 조헌영, 남자현과 엄순봉, 그리고 권도인 등이 대표적으로 활동했다. 

특히 나라 밖에서 활동한 몇몇 영양인들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굵직한 획을 그었다.

1910년 나라를 잃은 직후 주실마을에서 만주로 망명하는 인물이 대거 나왔고, 만주로 망명한 엄순봉은 아나키즘을 수용하고 중국 상해로 이동하여 주요 친일세력들을 연달아 처단하는 활약을 보였다. 또 만주로 망명한 남자현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만주국 주재 일본전권대사를 처단하려던 마지막 활동과 단식 투쟁으로 순국한 그의 삶은 여성운동사에서, 그리고 독립운동사에서 큰 족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침략국 수도인 일본 도쿄에서 펼친 조헌영의 3.1운동 6주년 기념시위와 신간회 도쿄지회장 활동,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떠나 힘겨운 삶을 극복하면서 독립운동에 기여한 권도인의 삶도 눈에 띈다.
 
■ 청기, 영양의 3.1운동 구심점으로
영양의 3.1운동 시작은 영양 주변지역인 예안·영해·영덕 및 안동 등지에서 3.1운동이 한창일 때 영양 청기에서 만세운동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점이었다.

광무황제의 죽음에 오석준 등 영양인들의 반일감정이 극에 달하였던 때에 안동 임동 만세를 주동한 이강욱·홍종률·류동수가 영양관내로 들어와 영양의 만세시위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영양 청기 함양오씨 동성마을에서 상청과 이웃해 살았던 오석준은 경술국치를 당하여 스승인 향산 이만도의 단식 순국에 이어, 1914년 김도현마저 순국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라를 찾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고종 승하와 맞물려 전국에 독립만세운동의 물결이 퍼져나가자, 그동안 다짐했던 생각을 실천할 기회로 영양의 만세운동 중심에 서서 임동 만세의 주역 세 사람과 함께 물꼬를 트게 됐다.
 
■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 영양의 3.1운동
비록 영양의 3·1운동은 3월 24일에 시작해 그 다음날에 끝났다.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한 지역은 청기·입암·영양의 3개 면으로 지리·경제·학문적으로 안동과 가까운 지역으로 안동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양에서는 6개 면 중에서 3개 면이 시위에 참여하는데 그쳐 대규모 시위 단계로는 나아가지 못하였고, 대체로 평화적인 시위 양상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는 실제적으로는 시위 첫날 청기면에 모인 500여 군중이 면사무소 유리창을 부순 것은 제쳐두고라도 다음날 군청·헌병분견소를 습격하기 위해 몰려간 것은 다분히 과격시위의 모습도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위대 167명이 연행돼 영양 만세운동은 스쳐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
지난 100년의 역사는 아픔과 이를 치유하기 위한 반성과 깨달음의 시기였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이들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희생이 있었으며, 이제 막 새롭게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에 서 있다.

앞으로 나아갈 100년은 지나온 과거의 발걸음을 되새기며 이를 교훈삼아 도전과 전진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으며, 이는 100년 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남녀노소 신분에 관계없이 앞장서 독립을 외치던 민초들의 울부짐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때의 정신을 이어받아 계승해야 할 것이다.

영양군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영양군 3.1독립의거 10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회를 민간에서 발족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 후 다양한 행사를 준비해,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계층별·연령별 독립선언문 낭독, 영양의 독립지사 60인에 대한 초헌(初獻), 영양 3.1운동의 시작을 주도한 오석준 지사의 시 낭송, 영양군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향후 영양의 희망 메시지를 담아 100주년에 담긴 의미를 알릴 결의문 낭독, 기타 3.1운동 100주년 기념을 위한 축가 공연으로 구성해 100주년 기념의 의미를 널리 알린다는 방안이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민간에서 구성된 10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꼼꼼하게 3.1운동 100주년 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지원하겠으며, 3·1절을 맞아 그 수단인 만세시위운동도 기념할 필요가 있지만, 본질인 독립선언을 했던 그 시대의 정신과 의미를 더 중요하게 받들어 진정한 의미의 3.1운동 정신을 본받을 수 있도록 군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전국매일신문] 영양/ 김광원기자
kw_kim@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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