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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33] ‘장흥에 가서 글 자랑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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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33] ‘장흥에 가서 글 자랑하지 말라’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6.05.25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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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지역의 기운이 인물을 키운다고 했을 때 천관산의 기운이 한강씨는 물론 이 땅의 쟁쟁한 문인들을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전라도 지역에는 지역과 관련된 금기어 아닌 금기어가 있다. ‘어느 지역에 가면 무엇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으로 지역의 강점을 드러낼 때 쓰는 말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보성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는 ‘여수에 가서 돈 자랑하지 말 것’이며 셋째는 ‘순천에 가서 인물자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도 널리 회자되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 하나를 추가해야 할 모양이다. ‘장흥에 가서 글 자랑하지 말라’는 신 금기어를 새롭게 추가해야 할 듯 싶다.

다름 아니라 최근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한 한강씨의 고향이 장흥이기 때문이다. 알려졌다시피 맨부커 상은 영어권에서는 최고를 자랑하는 상이다.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아시아 인이 맨부커 상을 받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더구나 이 땅의 인문학이 ‘쓰잘 데 없는 학문’으로 취급받은 지 이미 오랜데 40대 젊은 여류작가가 노벨문학상에 버금가는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경이로운 감동이다.

마치 이상화의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접하는 심경이었다. 그 한강씨의 고향이 장흥으로 알려지면서 장흥과 문필가의 연관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한씨의 아버지인 한승원씨는 지금도 장흥에서 ‘해산토굴’이라는 집을 짓고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한승원씨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추사’, ‘다산의 삶’ 등을 펴낸 국내 대표적 소설가이다. 한승원씨는 최근 주민 100여명을 초청해 딸인 한강씨의 문학상 수상 축하에 보답하는 마을 잔치를 열기도 했다.

장흥은 가사문학의 효시인 관서별곡을 지은 백광홍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관서별곡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밖에도 백광홍 선생의 동생인 백광훈, 청사 노명선의 고향이자 현대문학의 거봉인 이청준 송기숙 선생 등 수많은 문인을 배출한 고장이다. 장흥 출신 현대문학 등단 작가만 해도 무려 120명에 달한다고 한다.

장흥의 대표적 명산인 천관산에는 정상에 환희대(歡喜臺)가 있다. 만권이 책이 쌓여있는 것과 같다는 대장봉(大藏峯) 맨 위에 있는 석대다. 이 곳에 오르면 만권의 책을 읽은 뒤의 환희감을 느낄 수 있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지역의 기운이 인물을 키운다고 했을 때 천관산의 기운이 한강씨는 물론 이 땅의 쟁쟁한 문인들을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장흥군은 지역 전체가 살아 있는 문학박물관과 다름없다. 지역 곳곳이 소설과 시 등 문학작품의 배경이다. 마을마다 시인,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의 이야기가 서려있다.

영화 서편제, 축제, 천년학 등 촬영지도 산재돼 있다. 천관산 자락에는 460개의 문학돌탑과 국내 유명 문인들의 문학비 54개가 세워져 있는 등 문학자원 인프라 역시 장흥의 자랑거리이다. 명실공히 문학의 마을이 곧 장흥인 셈이다.

이러한 지역의 특색에 따라 장흥은 2008년 전국 최초로 문학관광기행 특구로 지정됐다. 대한민국 문학의 1번지로 장흥군을 지정한 것이다.

비록 인문학이 ‘쓰잘 데 없는 학문’으로 취급받고 있으나 인문학은 ‘유용’이나 ‘무용’을 떠나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원천의 가치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장흥은 큰 물질적 부자나 권력자의 고향은 아니나 대한민국의 품위와 정신적 가치를 드높이는 선도적 고장인 것이다.

때마침 전남도는 장흥의 이러한 기반을 토대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공모에 장흥군 유치신청서를 제출키로 했다고 한다. 국립한국문학관은 문학자료 수집과 복원, 보존, 연구, 전시, 교육 역할을 담당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국비 450억원을 들여 다음달까지 부지를 선정하고 2019년 개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인들의 고장인 장흥이 인문학의 부흥지로 새롭게 태어나 ‘장흥에 가서 글 자랑하지 말라’는 금기어 아닌 금기어가 새롭게 추가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장흥군은 천관산 등산로에 있는 ‘강호동 길’이나 ‘이승기 길’은 재고해주었으면 한다. 이번 기회에 ‘한승원.한강 부녀길’이나 ‘백광홍 길’, 또는 ‘이청준 길’이나 ‘송기숙 길’ 등으로 개칭했으면 한다. 장흥의 정체성을 스스로 훼손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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