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세상읽기 34] 섬마을 선생님과 후배의 슬픔
상태바
[세상읽기 34] 섬마을 선생님과 후배의 슬픔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6.06.15 13: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그의 섬에서 선생님은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이자 가장 존경받는 인격자였고 자녀의 미래를 일정부분 결정하는 위대한 존재였다. 선생님이라는 호칭 앞에는 ‘감히’라는 단어가 들어가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좋아하는 후배 중에 낙도 출신이 한 명 있다. 그 후배는 섬에서 중학교까지 마쳤다.
그는 지금도 가끔씩 중학교 때 처음 타 본 택시의 기억을 꺼내 스스로 ‘촌놈’을 자처한다. 그의 ‘셀프 촌놈’ 이야기는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친척집에 가기 위해 어머니 손을 잡고 목포항에 내리면서부터 시작된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어머니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겨우 조그마한 차를 한 대 세우더니 아들부터 집어 넣었다. 이어 어머니도 땀을 훔치며 육중한 몸을 구부려 그 작은 차에 올라탔다. 거의 동시에 그들 옆의 승강장으로 커다란 차 한 대가 와서 승객들을 태웠다.

그 때 후배는 집안의 가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은 모두 서서 저렇게 큰 차를 타는데 울 엄마는 가난하여 이 작은 차를 허리 숙여가며 타는 구나!”

그가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의 고향에서 엔진을 이용한 이동수단은 경운기가 유일했던 시절이다. 조명은 호롱불과 남포등 밖에 없는데다 연탄조차 본 적이 없어 목포에 사는 친척집의 연탄냄새가 무척 고역이었다는 그다.

그럴 때마다 모두들 웃으며 “촌놈, 출세 많이 했네!”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왔다. 세상의 가치로 볼 때 사실 그는 출세한 인물이다. 그는 88년 언론자율화 조치와 함께 언론계에 들어와 광주 모 일간지 편집국장을 끝으로 언론계를 떠났다. 지금도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살고 있으니 그럭저럭 출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정색을 하고 부인했다. “출세가 아니다. 육지로 나오는 통에 국가발전을 위한 기회를 놓쳤다”라고 억지 소리를 하곤 했다.

그리곤 대한민국 지도를 거꾸로 보자고 한다. 맨 선두에 제주도가 있고 그 밑으로 작은 섬들이 무수히 깔려있다. “환태평양 시대에 대한민국은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는 북방으로 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저 넓은 남방의 바다로 나가야 한다. 내 고향은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을 이끄는 예인선이다”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듣고 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런 그의 장래 희망은 선생님이었다. 그 당시 그가 자신의 고향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섬에서 선생님은 범접할 수 없는 불가침의 대상이었다.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무서운 부모님도 선생님 앞에서는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곧잘 부른 곤 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 열아홉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 서울에는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섬 색시의 순정은 존경과 흠모였다는 그의 설명이 아니어도 시골 섬의 선생님에 대한 선망이 그의 노래 가락에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그의 섬에서 선생님은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이자 가장 존경받는 인격자였고 자녀의 미래를 일정부분 결정하는 위대한 존재였다. 선생님이라는 호칭 앞에는 ‘감히’라는 단어가 들어가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그런 선생님이 학부모들에 의해 집단 성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섬에서 발생했다. 어떠한 연유이든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자신의 자녀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성폭행한 일은 ‘인륜에 반하는 파렴치한 행동’임이 틀림없다.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법의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사건의 파장은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되고 있다. 개별적 사건이 아니라 섬에서 발생한 사건이 되더니 이제는 보편적 사건이 되어 호남혐오로 확산되고 있다. 마치 섬에 사는 주민들과 호남사람들이 문제인양 호도되고 있다.

며칠 전 ‘섬놈’을 자부하던 그 후배가 가족과 함께 필자의 집을 찾았다. 그는 막걸리 잔이 오가면서 매번 지껼였던 ‘출세했다!’는 농담에도 예전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냥 피식 웃을 뿐이다.

그리곤 대뜸 “예전엔 섬 출신임이 자랑스러웠는데 이제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동심의 추억을 빼앗겨 버린 자의 분노였다. 이제 누가 섬마을 선생님을 선망과 존경의 눈으로 보겠느냐는 반문이었다.

후배는 사실이 사실보다 더 큰 확신으로 확산되고 마침내 확신이 사실처럼 굳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후배가 다시금 섬마을 선생님의 동심을 찾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듯 싶다. 세상은 사랑보다 증오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