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세상읽기 36] 생뚱의 시각으로 본 브렉시트
상태바
[세상읽기 36] 생뚱의 시각으로 본 브렉시트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6.07.06 11: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유색인종’이라는 표현은 무식의 극치이자 자기비하이며 피부색에 대한 사대주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백인종들의 인종차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에 다름 아니다.

최근 몇 주는 그야 말로 브렉시트로 불리는 영국의 EU탈퇴로 온 지구촌이 술렁였다. 각국의 주식시장이 출렁 거리는 등 경제에 비상이 걸리고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언론들은 앞 다퉈 브렉시트의 향후 전망을 잇따라 쏟아내고 세계의 금융질서에 끼칠 부정적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중국. 러시아를 축으로 하는 공산권 국가간의 패권에도 큰 변화를 가져 올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언론은 브렉시트의 숨은 배경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인들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잉글랜드 중심주의와 인종주의의 우월성이 이번 브렉시트의 주요 동기라는 분석이 나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민자들이 들어와 자신들의 일터를 빼앗는데다 EU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독일이 꼴보기 싫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 때 ‘해가지지 않는 제국’으로 지구촌을 좌지우지 했던 대영제국의 후손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위기의식이 함께 빚은 초라한 자화상의 확인이라는데 필자도 동의한다.
필자가 딴지를 걸고 싶은 것은 다른 곳에 있다. 브렉시트에 대한 분석 기사나 대학교수를 중심으로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기고문에서 보이는 무의식적 자기비하 의식이다.
생뚱맞지만 인류를 백인과 유색인종으로 구분하는 피부색 사대주의가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되고 있는 것에 심한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몇 가지 표현을 들어보면 이렇다. ‘인도나 아시아대륙 출신 유색 인종’이라거나 ‘유색인 이민을 둘러싼 사회갈등’ 등의 표현이다. 심지어 어느 대학 교수는 전문가 기고에서 ‘백인 자치령이 아닌 다른 신영연방국가의 유색인종’이라는 표현도 배짱 있게 사용하고 있다.
이들 표현을 보면 마치 인류는 백인과 유색인종으로 구분되는 듯하다. 더구나 백인에 대해서는 백인종이라는 표현도 아닌 그냥 ‘백인’이라고 부른다. 우리 스스로가 인류를 ‘백인과 기타 등등’으로 표기하고 있는 셈이다.
백색이 무색은 아니다. 흰색, 다시 말해 백색도 유색이다. 백인종 황인종 홍인종 흑인종 등 모든 인류는 유색인종이다. 더구나 ‘유색인종’이라는 말에는 흰색인종보다 못하다는 차별의식이 깊이 감춰져 있는 표현인다. 백인우월주의의 대표적 표현인 것이다.
때문에 ‘유색인종’이라는 표현은 무식의 극치이자 자기비하이며 피부색에 대한 사대주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백인종들의 인종차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에 다름 아니다.
한 때 우리는 ‘살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 문자 그대로 우리의 피부색에 가까운 색을 살색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살색이라는 단어가 인종차별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살색을 국가의 관용색에서 제외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1년 한국기술표준원에 ‘살색’이라는 색 이름을 바꿀 것을 권고했고 표준원은 다음해에 연주황색을 거쳐 최종적으로 살구색으로 바꾸었다.
“‘살색’이라는 이름은 특정 피부색을 가진 인종에게만 해당되고 황인종이 아닌 인종에 대한 합리적 이유 없이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을 침해할 수 있으며 인종과 피부색에 대한 차별적 생각을 키울 수 있다”는 이유였다.
‘살색’에는 ‘검은 색도 있고 노란 색도 있고 흰 색도 있고 이는 모두 인간의 피부색’이라는 평등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류애적 사상에 입각한 매우 합리적 결정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언어는 생각의 표현이지만 동시에 생각을 지배하기도 한다. 살색이라는 이름의 관용색이 살구색으로 바뀜으로 피부색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바뀐 것도 언어가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흰색피부를 가진 일부 백인종들의 허황된 우월주의와 극우적 행태가 많은 비극을 낳고 있는 요즘이다. 피부색이 열등과 우월을 나타내고 나아가 선과 악을 구분 짓는데 ‘유색인종’이라는 표현이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살색’이라는 표현이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을 침해할 수 있다면 ‘유색인종’이라는 표현은 평등권을 더욱 심하게 침해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인간의 피부색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진전된 사고가 필요할 듯싶다. 그에 앞서 우리 스스로 인류를 백인과 유색인종으로 나누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함은 말 할 나위가 없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