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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49] 이완용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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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49] 이완용은 살아 있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7.01.18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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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지식인이 권력자의 애완견에 비유되는 사회는 칠흑 같은 밤에 항로를 잃은 배와 다름없다.

매국노의 대명사인 이완용은 스물넷에 과거시험에 합격한 이래 대한제국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서른 살에 세자의 교육책임자를 거쳐 주미 대리공사를 지냈다. ‘박근혜 게이트’의 국정농단 주역들이 대게 그랬듯이 이완용도 어릴 적 신동이라 불릴 만큼 머리가 좋았다.

친미파였던 이완용은 고종의 아관파천을 계기로 친러파로 돌아서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번개처럼 친일파로 돌아섰다.

“외교권 양도 문제는 훗날 대한제국의 역량이 충실해지면 자연스레 반환될 것이다” 어전회의에서 이완용이 밝힌 합방의 논리다. 더러운 야욕은 ‘제국의 역량에 따라 국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로 감췄다.

그리곤 곧바로 ‘대한제국 황제 폐하는 대한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 한다’는 조약문에 날인했다.

1910년 8월 22일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다. 조약문은 일주일 뒤 순종의 조칙형태로 발표된다. 무능하고 멍청한 지도자와 머리 좋고 유능한 각료의 합작품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이리도 흡사한지 모르겠다.

이완용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본국 황제 폐하는 공로가 있는 조선인으로서 특별히 표창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대하여 영예 작위를 주는 동시에 은금을 준다’는 조항을 끼어 넣었다. 이완용의 뛰어난 머리는 나라를 팔아먹으며 매매수수료까지 챙기는 비상함을 보인 것이다.

결국 이완용은 거간의 대가로 날개를 달아 내각 총리대신 겸 궁내부대신에 취임한다. 덤으로 백작의 작위와 총독부 은사공채금 15만원을 받았다.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은 덕에 조선의 실질적 권력 1인자가 되고 둘째가라면 서러울 갑부의 반열에 오른다.

이완용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불순세력에 의한 불순한 난동에 불과하다”고 했다. ‘불순세력’이라는 말은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 통치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금과옥조다.

이완용은 또 “해가 바다 속을 떠나지 않았을 땐 온 산이 어둡더니, 하늘로 떠오르니 온 세상이 밝아지는 구나”라며 송태조의 영일시(詠日詩)를 빗대 일본을 찬양했다. 조선에서는 이보다 더한 매국노가 있을 수 없고, 일본으로서는 이보다 더한 애완견이 있을 수 없다.

이완용은 68세 되던 해 저승으로 갔다. 한일합방 1년 전 1909년 12월 이재명 의사의 칼에 왼쪽 폐가 찔린 뒤 그 후유증을 앓다 1926년 2월12일 죽었다. 이 지사의 칼에 그 즉시 죽었다면 매국노의 상징이라는 영원한 형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죽지 못한 이완용은 죽어서도 불행하다.

이완용이 죽자 동아일보는 ‘무슨 낯으로 이 길을 떠나는가’라는 제목의 1면 사설을 통해 ‘어허, 부둥켰던 그 재물을 그만하면 내 놓지! 악랄했던 이 책벌을 이제부터는 영원히 받아야지’라며 그를 꾸짖었다. 신문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행금지되고 결국 기사를 삭제하고 호외로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의 사설처럼 이완용은 죽은 날부터 매국노의 상징으로 영원한 책벌을 받고 있다. 1979년엔 증손자 등 후손들이 ‘오래 둘수록 치욕만 남는다’며 묘를 파헤쳐 유골을 화장한 뒤 물에 뿌렸다. 당시 관 뚜껑에는 매국의 댓가로 받은 ‘조선총독부 충추원부의장 정2위 후작 우봉이공지구’라는 긴 글이 쓰여 있었다. 관 뚜껑은 원광대 박물관에 팔린 뒤 이완용의 친척이자 친일사관의 역사학자인 이병도가 가져가 태워버렸다고 전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완용이 죽은 지 90여년이 되는 오늘의 대한민국엔 아류 이완용이 득실대고 있다. 평소 신동이라 불릴 만큼 공부 잘한 사람들이 무능한 대통령 밑에서 나라를 망친 현장을 국민들이 지켜보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좋은 머리는 나라를 망친 댓가로 개인의 영달을 얻고 그러면서도 ‘방귀 뀐 놈이 화를 낸다’며 ‘부역자’라는 지적엔 발끈한다. 능력은 있되 양심은 없는 더러운 지식인들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 나라의 지식인들이 추하고 지겹다.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부역한 지식인들의 죄를 반드시 물어야 한다. 역사에 새기고 관 뚜껑에 기록해 후손들이 부끄러움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식인이 권력자의 애완견에 비유되는 사회는 칠흑 같은 밤에 항로를 잃은 배와 다름없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서이다. ‘어제의 죄악을 오늘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악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 알베르 까뮈의 말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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