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세상읽기 52] 태극기를 든 손은 숭고해야 한다
상태바
[세상읽기 52] 태극기를 든 손은 숭고해야 한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7.03.01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태극기가 극우 보수의 전유물처럼 이미지가 굳어 가면서 국민들의 거부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앞으로 올림픽 등 세계무대에서 뛰는 태극전사들이 메달을 따서 국기 게양대에 오르면 극우 보수주의자로 보이겠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다.

어제는 3.1절 기념일이었다. 전국이 태극기 물결로 가득 찼다. 이날의 태극기는 98년 전인 1919년 3월 1일 조국독립을 위한 조선 민중의 기개로 타올랐던 그 태극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제의 태극기에서는 선열의 고귀한 희생으로 지켜낸 나라의 긍지가 희석됐다. 대신 비루한 정권의 방패막이 같은 불편함이 태극기와 함께했다. 태극기를 시위의 수단으로 사용해 온 몰박세력(박근혜에 몰입하는 세력)의 극성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태극기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 그 이상의 가치가 태극기에는 담겨있다.

오늘로써 꼭 115년 전인 1902년 3월 2일,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일명 ‘단지동맹’이라는 비밀결사대를 조직했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무명지 잘린 안 의사의 손도장이 탄생했다. 안 의사를 비롯한 독립지사들이 왼손 무명지를 끊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 한 것이다. 그리고 끊은 무명지에서 흐르는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는 네 글자를 새겼다.

안 의사는 태극기 앞에서 맹세한 대로 그해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쏴 죽였다. 뒤이어 가슴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휘날리며 ‘꼬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태극기는 안 의사가 경찰에 제압당할 때까지 휘날렸다.

윤봉길 의사도 태극기 앞에서 권총과 수류탄을 들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할 것을 다짐한 뒤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 기념식이 벌어지던 중국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졌다.

윤 의사는 순국 전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라는 제목의 유서를 남겼다. 두 병정은 아들 모순과 담이다. 유서에서 윤 의사는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의 술을 부어 놓으라’고 했다. 태극기를 조국독립을 위한 신념의 가치로 여겼다.

윤 의사의 의거에 앞서 1월 8일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진 이봉창 의사도 거사 전 태극기 앞에 섰다. “나는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 하겠다”고 선언했다. 죽음으로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겠다고 태극기 앞에서 맹세한 것이다.

이처럼 태극기는 일제강점기에 민족혼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국민들에게는 가슴속의 맥박을 뛰게 하는 신념이자 원동력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태극기는 세계인들에게 경이로움이었다. 붉은 악마의 ‘필승 코리아~’가락과 함께 물결 타며 휘날리는 태극기를 통해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하나 된 힘을 보여줬다. 국민들에게는 가슴 벅찬 긍지였고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우리에게 국기인 태극기는 국가의 상징 그 이상이다. 겨레의 혼이 담겨 있고 선열의 피가 묻어 있다. 태극기 앞에서면 이유 없이 가슴이 뛰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런 태극기가 정치적 수단의 시위 도구로 전락하면서 태극기의 상징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몰박으로 인해 태극기의 이미지 위로 부패정권의 보호막이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관제데모에 어버이연합이라는 단체를 동원하여 ‘어버이’라는 숭고한 이미지마저 훼손시킨 것과 같은 이치다. 잘못된 정권이 자신들만 추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국기와 부모의 이미지까지 끌어안고 물귀신이 되겠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태극기가 극우 보수의 전유물처럼 이미지가 굳어 가면서 국민들의 거부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앞으로 올림픽 등 세계무대에서 뛰는 태극전사들이 메달을 따서 국기 게양대에 오르면 극우 보수주의자로 보이겠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다.

오죽했으면 독립유공자 단체인 광복회가 지난달 27일 ‘3.1절! 태극기의 의미’라는 제목의 성명서까지 냈겠는가 싶다. 광복회는 성명서를 통해 무분별한 태극기 사용 남발로 특정 목적을 실현하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며 “태극기가 특정집단의 이익을 실현하려는 시위도구로 사용된다면, 태극기를 소중히 여기셨던 선열들에 대한 예의도, 도리도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광복회는 또 “일제의 총칼 앞에 무참히 산화하신 3.1독립운동 선열들이 통탄할 일”이라고 꾸짖었다.

태극기가 특정집단의 전유물이 되고 결국 극우세력의 상징이 되는 것은 국기에 대한 모독이다. 태극기가 우리의 자긍심에 상처를 주고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일은 죄악이다. 태극기의 가치는 지켜져야 하고 태극기를 든 손은 숭고해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