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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53] 그녀에게 놀라지 않을 자신감이 생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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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53] 그녀에게 놀라지 않을 자신감이 생긴 이유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7.03.15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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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가당치도 않은 ‘약한 여자 코스프레지’만 춥다면 먼저 팽목 앞 바다의 차디찬 물에서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있는 어린 영혼들을 생각해 보라. 당신이 있는 곳이 정말로 추운가.-

 

먼저 그녀에 대한 호칭에서 ‘전 대통령’이라는 과거의 직함을 사용하지 않을 계획임을 밝히고자 한다. 첫 번 째 이유는, 전에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국가유지의 근간인 헌법을 위반하여 탄핵된 공직자의 과거 직함을 굳이 붙이는 것이 격에 맞겠는가 하는 생각에서다.

둘째는, 탄핵된 뒤에도 그녀는 전직 대통령임을 스스로 부인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녀가 집으

로 돌아간 뒤에도 전직 대통령이 맞는가 하는데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과거의 호칭은 사치스러울 수 있다.

셋째, 그녀에게 과거의 직함을 붙여 부르게 되면 그녀보다 먼저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과 격이 같아 보이는 것도 거북스러운 일이 된다.

마지막으로는 조선시대에도 폐위된 왕들에게는 조(祖)나 종(宗)을 붙이지 않고 군(君)이라 불러왔다. 광해군, 연산군 하듯이.

따라서 공직에서 파면돼 자연인이 된 만큼 ‘그녀’나 또는 ‘박근혜’라고 호칭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사적으로는 굳이 이름 뒤에 ‘전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아도 ‘박근혜’하면 그녀가 누군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다는 충분한 조건도 한 이유가 되겠다.

서두가 길어졌다. 지난 일요일 저녁 해가 어둑해져서 박근혜는 청와대를 나와 개인의 집으로 돌아갔다. 국민들은 어떤 기대 속에 텔레비전의 생중계를 통해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기대는, 국민들에 대한 사죄와 헌재 결정의 수용에 대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한 마디였다. 생방송을 진행하는 기자나 토론자들 역시 ‘혹시나’ 하며 그녀의 고개숙인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한 줌도 못되는 세력이지만 그녀와 국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부의 극렬 행위로 국론이 시끄러워지면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잘못된 기대였을까. 그녀는 마지막까지 국민들의 기대에 침을 뱉었다. 심복 국회의원을 통해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했다. 지지자들에게만 한 소리다. 나아가 그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고도 했다. 만장일치로 채택된 헌재의 탄핵결정을 불복한다는 속내가 강하게 드러났다. 결국 지지자들에게 지금처럼 탄핵을 반대하며 나를 위해 싸워달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그녀는 그랬다. 세월호가 침몰하여 국민들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머리손질을하며 출근조차 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는 오로지 자신밖에 몰랐다. 그런 그녀에게 어찌 ‘전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겠는가.

어쩌면 박근혜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때 ‘적어도 한 마디 사죄의 말은 하겠지’했던 것은 그녀를 보통사람들과 동일한 지적능력과 도덕성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장관들과 대면을 기피하고 수첩이나 비선에 의지했던 데서 드러나듯 지적능력은 물론 도덕성에 있어서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평균 이하임을 드러냈다. 그녀가 평균정도의 사고만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애시당초 국회의 탄핵소추도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수긍을 얻어 가고 있는 이유다.

검찰수사가 두렵고 어느 경우 죄수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아서 지지자들에게 울며 매달린 것이라 여겨지지만 그녀는 순간을 살기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이제 국민들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무슨 행위를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정상이라 여겼던 내가 잘못이었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심복들을 통해 슬슬 동정심을 자아내려 하고 있다. 집이 춥다거나 발목이 불편하다며 ‘약한 여자 코스프레’로 동정을 구걸하고 있다.

가당치도 않은 ‘약한 여자 코스프레지’만 춥다면 먼저 팽목 앞바다의 차디찬 물에서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있는 어린 영혼들을 생각해 보라. 당신이 있는 곳이 정말로 추운가.

아니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의 고별 연설을 한 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가족도 한결같이 그렇게 하라고 권했다. 지금도 내 본능은 (사임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국익은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해야 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나라의 상처를 치료하고, 지난 시간의 비통함과 분열을 과거사로 돌리는 것이다” 닉슨은 자신의 억울함에 앞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써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 닉슨은 당시 사상 최악의 대통령이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다.

아, 어쩌면 이 또한 그녀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평균적 사고와 능력의 소유자라고 여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말을 취소하고자 한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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