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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56] 나이 듦이 욕됨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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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56] 나이 듦이 욕됨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7.04.26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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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이번 대통령선거로 탄생하게 될 정권은 용서하지 못할 것은 용서하지 말고 처벌할 것은 처벌하되, 제발이지 ‘어버이’를 정치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는 요즘 나이 들어가는 게 두렵다. 근육이 줄어들고 덩달아 눈이 침침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화의 현상은 나이 듦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로 불편하지만 감내하지 못할 것도 아니고 더러는 나이 들어 좋은 것도 많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그랬다.

불같던 젊은 날의 혈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타인의 삶까지 살펴보는 여유가 깃들고, 작은 일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도 젊은 날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근육은 나이에 반비례하더라도 지혜는 나이에 비례한다는 경험이 나이든 삶을 편안케 했다.

그런 나이 듦의 삶이 올 들어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나이 듦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낯 두꺼움' 의 동의어로 우리 사회에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어버이 연합’이라는 관변단체가 정부기관에 의해 용역 동원되듯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더니 올 초부터 시작된 탄핵정국에서는 박근혜의 친위대 역할을 했던 것도 대부분이 나이든 세대였다.

생떼 같은 아이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허우적거리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출근조차 하지 않은 대통령을 감싸고 두둔하는 나이 듦이 가엾고 슬펐다. 그들은 내 아이들이 죽어가던 시간에 너는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 것도 불경스러워하고 있다. 단 한 번도 내 나이 듦으로 느껴보지 못한 부끄러움이고 가여움이다.

더구나 그런 박근혜를 변호하던 나이든 변호사들의 사납고 거친 언어와 행동들은 아직도 폭력의 아픔으로 지워지지 않은 채 여전한 생채기가 되고 있다. 나이든 세대로서 젊은이들 보기 부끄러웠고 법이 호랑이보다 더 사나워도 법은 법의 품위가 있다는 믿음이 송두리 채 무너지는 순간들이었다.

일인 영구지배를 위한 유신헌법의 기초를 닦은 덕에 늙어서도 권력의 단맛에 빠져 살던 나이든 비서실장은 또 어떠했던가. 그의 입에서 나온 ‘우리가 남이가’라는 씻지 못할 역사의 죄악은 오히려 그에게 훈장이 되었으니 그의 침침한 눈에 세상은 조막 만하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에게 나이 듦의 경험과 지혜는 자신의 권력과 재화를 지키기 위한 노회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상이 대통령 선거로 들끓고 있는 이 때, 느닷없이 30년 전의 독재자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신문지상에 올라 나이 듦을 더 슬프게 하고 있다.

전두환과 그의 아내 이순자가 잇따라 회고록이라는 책을 냈는데 그 후안무치함이 참으로 가관이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5.18당시 광주에서 양민학살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발표명령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씨는 더 나아가 5.18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것을 증언한 미국의 피터슨 목사나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했다. 전씨는 회고록에서 “(헬기사격 목격 증언은)악의적 왜곡이다. 그들은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표현했다. 또 그의 아내 이순자는 “우리도 5.18의 피해자”라고 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이를 두고 어느 심리학자는 “반사회적인격장애자, 즉 소시오패스의 방어기제”라고 했다지만 그들의 가면 뒤에 감춰진 민낯에서 우리는 사람의 얼굴 대신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생명체를 보게 될 것만 같아 두렵다.

피묻은 손을 씻지 않은 채 죄악으로 물든 삶을 마무리하려는 전씨나 이씨의 회고록은 심리학자의 진단처럼 불쌍한 소시오패스의 헛소리라 치부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믿고 악용하는 세력이 우리사회의 위협이 되기 때문에 경계해야 하고 또 처벌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박근혜 탄핵정국에서 이들에 의해 예사로 등장했던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거나 “빨갱이 처단” 등과 같은 용어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들에 의해 정의가 불의가 되고, 불의가 정의가 되는가 하면 진실이 허위가 되고, 허위가 진질이 되는 그런 일이야 발생하지 않겠지만 사회적 갈등이나 대립 등 비용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두환이 회고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었던 데는 국민화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으로 대통령 사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화합이라는 명분의 사면이 오히려 국민분열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면이 더 큰 죄악을 낳고 범죄인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최근의 모든 나이 듦의 허물들은 일부이기는 하지만 정치라는, 권력이라는 수단에 의해 조장되거나 야기된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며칠 있으면 어버이날이 있고 다음날은 대통령 선거일이다. 이번 대통령선거로 탄생하게 될 정권은 용서하지 못할 것은 용서하지 말고 처벌할 것은 처벌하되, 제발이지 ‘어버이’를 정치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버이는 자랑이고 존경의 대상이어야 한다. 언제까지나.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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