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64] 광주에 전두환의 부조상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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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64] 광주에 전두환의 부조상을 만들자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7.08.3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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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 두 눈 부릅뜨고 80년 광주를 직시해야 한다. 그날의 아픈 역사가 오늘의 성숙한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됐고 불의에는 목숨을 걸고 저항해야 한다는 정의의 신념을 위해서라도...”

 

80년 광주를 직시하는 것은 편치 않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회피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대목이며 정치군인들이 내란을 일으켜 어떻게 국가를 유린하고 한 도시를 피로 물들였는가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 도시를 피로 물들인 댓가로 권력과 부를 움켜진 자들과 그들에 부역하거나 기생했던 자들의 영향이 아직 남아 있기에 80년 광주를 직시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 두 눈 부릅뜨고 80년 광주를 직시해야 한다. 그날의 아픈 역사가 오늘의 성숙한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됐고 불의에는 목숨을 걸고 저항해야 한다는 정의의 신념을 위해서라도 그날의 광주를 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불행한 과거를 들춰내 상처를 덧나게 하는 일이 아니라 밝은 내일을 위한 희망가이다.

하지만 80년 광주를 직시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부류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적잖다. 내란 수괴인 전두환처럼 손에 묻은 피를 감추고자 하는 것이야 그렇다치더라도 80년 광주의 진실을 모르거나 잘못 입력된 정보로 인해 불편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사회에는 여전히 영화 ‘택시 운전사’의 김사복이 광주의 현장을 직접 보기 전까지 ‘우리나라 같이 좋은 나라가 어디에 있는데, 학생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하는 식의 무지가 80년 광주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내란 학살자의 충실한 나팔수를 자처했던 일부 보수 언론은 지금도 ‘이번이 5.18에 대한 4번째 조사가 될 것’이라며 진상규명에 노골적으로 저항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아직도 5.18이냐”며 불편해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무지에서 비롯되고 있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이처럼 깊고 큰 영향으로 남아 불의를 정당화하는 우를 범한다. 때문에 이 땅의 정의실현을 위해서라도 80년 광주는 그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4번이 아니라 40번, 400번이라도 조사하여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정의는 다른 것이 아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 매국노는 반드시 처벌되고, 불의한 권력은 반드시 댓가를 치러 교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의다. 그래야만 매국노가 생기지 않고 불의한 권력자가 나오지 않는 법이다.

‘어제의 죄악을 오늘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악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는 알베르 까뮈의 말은 80년 광주의 진실을 밝혀야 할 이유이자 당위인 것이다.

내란수괴 전두환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가면은 쓴 사탄’이라고 한 것도 그의 죄악을 우리가 벌하지 않은 탓에 그가 내일의 죄악에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내란을 일으키고 내란을 목적으로 살육을 자행한 살인자가 자신을 미화하는 자서전을 내고 자서전을 통해 시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신부를 사탄이라고 부르는 일이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1일 공개된 미국 국방정보국(DIA)의 비밀문서는 ‘80년 5월, 광주시민에 대한 신군부의 무자비한 진압 작전은 전두환의 베트남전 경험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신군부 수뇌부들(전두환, 노태우, 정호용)이 베트남전에서 경험을 쌓았고, 그곳에서 공산당으로 보이는 베트콩(베트남인)을 죽인 것처럼 광주 시민을 국민이 아닌, 베트콩처럼 취급하며 잔혹하게 진압했다’고 적었다. 보고서는 베트남에서 미군이 양민을 학살한 마을인 ‘미라이(MY LAI)’에 빗대 광주를 ‘한국의 미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전두환 등 학살자들에게 80년 광주는 적국이었고 광주시민들은 베트콩과 같은 섬멸해야 할 적이었다. ‘군인들은 초기 학생들과 시민들을 뒤 아가 대검으로 찌르고, 총을 쏘고, 불을 질렀다’는 미 정보국의 보고가 아니더라도 학살자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최근에는 “비행단 전체에 지상 공격용 폭탄을 탑재하고 출격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당시 제 10전투비행단 소속 공군 조종사의 소름끼치는 증언까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적지를 공격하듯 광주라는 도시를 아예 폭격하려 했다는 증언이다.

이에따라 문재인대통령이 당시 공군전투기 부대의 광주를 향한 출격대기와 전일빌딩을 향한 헬리콥터 기총 사격등에 대해 국방장관에게 특별조사를 지시, 80년 광주의 진실규명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를 계기로 국회에 계류중인 5.18관련 특별법의 제정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만 제안 하고자 한다. 대통령의 특별조사 지시와 국회의 특별법 제정으로 발포명령자 등이 밝혀지면 서울 명동이나 광주 충장로에 학살자의 부조상을 깔아 지나는 사람들이 발로 밟고 지나도록 하자.(함양의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에는 한국전쟁중 양민을 학살했던 관계자들의 부조상을 만들어 벽에 가둬놓고 있다.) 만대에 걸쳐 국민에 대한 그의 악행을 기억하게 하자는 것이다. 제2의 학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내일의 죄악에 용기를 갖지 못하도록. 그리하여 이 땅에 정의가 실현됐음을 보여주자.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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