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72] 순천만에 철새는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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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72] 순천만에 철새는 오는데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7.12.2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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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AI는 이제 해마다 반복돼 나타나는 풍토병처럼 재앙으로 굳어가고 있고, 그렇다고 날아드는 철새를 못 오게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매년 겨울이면 순천만은 정기행사를 하듯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을 넘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순천만이 조류인플루엔자(AI)로 문을 닫은 지 한 달이 됐다. 전남도는 순천만 야생 철새 분변에서 검출된 H5N6형 바이러스가 고병원성으로 밝혀진 지난달 21일 순천만을 폐쇄하고 습지 관광객 출입을 전면 금지 했다.

반경 10km 이내에는 거점 소독시설을 설치해 이동차량에 대한 방역을 강화하고 있고 철새도래지 주변에는 군 제독 차량을 동원해 매일 소독을 실시하는 등 AI확산 방지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순천만이 AI로 폐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순천시는 순천만습지에서 AI가 확진되지 않았는데도 선제적 차단 방역을 위해 지난 2014년과 2016년에도 두 달 가까이씩 순천만을 폐쇄했었다. 이같은 노력 탓인지 다행히도 순천만을 기점으로 한 AI의 확산 방지는 아직까지 성공적이다.

새들도 여느 해 보다 많이 무리지어 날아들고 있다. 흑두루미,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갈매기, 흑부리오리 등 온갖 철새들이 모여들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철새도래지인 순천만의 거대한 갈대밭에 53여종 2만8천여마리의 철새들이 모여들어 순천만은 그야 말로 철새의 낙원이 됐다.
 
특히 천연기념물 제228호이자 순천만의 대표적 철새로 사랑을 받고 있는 흑두루미도 12월들어 2천73마리가 관측돼 최단시간 최대치를 갱신했다. 이는 1996년 11월 70여 마리가 관찰된 것과 비교할 경우 무려 30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흑두루미의 개체수가 매년 1월 정점을 찍는 것을 감안 할 경우 올해 순천만을 찾는 흑두루미가 2천500여 마리를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순천만이 일본의 이즈미시와 함께 세계 최대의 흑두루미 월동지임은 물론 생태환경의 도시 순천의 실증이기도 하다.
 
순천만의 철새 낙원과 생태도시 순천은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철새들의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청정농사를 고수하고 벼 조기수확을 하는가 하면 개펄로 유입되는 강물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생활하수를 줄이는데 앞장서온 시민들의 노력이 낳은 결과다. 순천만의 오염을 막기 위해 인근 음식점들은 자리를 옮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6년 연안습지 최초로 국제습지조약인 람사협약에 등록돼 그 보존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도, 2015년 순천만이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것도 모두 이러한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과 협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일들이다.

하지만 철새들이 날아드는 순천만에 정작 사람들의 발길 끊이면서 순천의 지역 경제가 활기를 잃고 지역상인들의 고통은 날이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
 
겨울 철새로 인한 성수기를 맞야야 할 순천만 주변 상인들은 직격탄을 맞았고, 순천역과 아랫장 야시장 등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식당과 숙박시설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단체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와 가족단위의 승용차들로 가득 찼을 순천만 주차장에는 겨울바람보다 더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다. 그나마 가끔씩 찾는 사람들도 인근 관광지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실정이다.
 
주말이나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젊은이들로 붐비던 순천역 근방이나 순천아랫장 역시 피부로 느낄 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다.
 
문제는 이러한 사정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자칫 내년 2월이나 3월까지도 순천만이 AI로 인해 문을 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4년에는 3월15일까지 문을 닫았었고, 지난해에는 2월3일까지 폐쇄했었다.
 
더구나 AI는 이제 해마다 반복돼 나타나는 풍토병처럼 재앙으로 굳어가고 있고, 그렇다고 날아드는 철새를 못 오게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매년 겨울이면 순천만은 정기행사를 하듯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을 넘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정부와 전남도, 순천시 등은 AI가 순천시민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재앙이 되지 않도록 서둘러 대안을 마련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순천만의 폐쇄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단순히 폐쇄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순천만을 람사협약에 가입시키고,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으로 만든 순천시민들에게 ‘대안 없는 순천만 폐쇄’를 감내하라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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