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75] 첫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된 그들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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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75] 첫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된 그들을 그리며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8.01.24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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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부패한 권력자들은 저리도 뻔뻔한 얼굴로 잘만 사는데, 가난한 이들은 여관 숙박비 몇 푼을 아끼려던 것이 마지막 여행길이 되어야 하는가요.”

 

지독한 미세먼지가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날이 며칠간 계속되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눈이 내립니다.  눈은 약속시간에 기는 사람처럼 겨울바람에 분주히 날립니다.  차갑고 황량한 날입니다.

하지만 차갑고 황량한 날씨도 가난한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비하면 그게 뭐 대수가 되겠습니까. 추위야, 까짓 거 옷 한 벌 더 껴입으면 되겠지만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한기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지요. 마음속 한기도 추위처럼 옷 한 벌 더 입어 이겨 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 서울 한 복판에 자리한 여관에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 세 모녀가 숨졌다는 기사를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중식당 배달원인 유모씨(53)가 지난 20일 새벽 여관 업주에게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홧김에 여관에 불을 지른 것이지요.

부패한 권력자의 죽음은 뺀 모든 죽음은 언제나 숙연하고 슬프지만 이번 방화로 숨진 박모(34·여)씨와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14세, 11세 두 딸의 죽음은 생살을 오려내듯 아파옵니다. 그 허망한 죽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 까요.

박 씨 모녀는 사고 5일전인 지난 15일 두 딸의 겨울방학을 맞아 겨울 여행에 나선 길이었습니다. 전남 장흥의 고향집에는 가난한 목공인 아버지만 덩그러니 혼자 남겨 두었습니다.

아내와 딸들을 배웅했던 아버지는 며칠 뒤면 소란소란 일상의 삶이 다시 이어질 것을 의심하지 않았겠지요. 의심치 못한 것은 아내와 딸들이라 하여 다를 리 없었을 테고요.

아마도 가족은 몇 개월 전부터 반찬값을 아껴가며 여행경비를 마련했을 것입니다. 아빠는 아내와 딸들이 겨울여행을 나서는 날 아침, 애써 모은 만원짜리 지폐 몇 장을 딸들의 손에 쥐어주었을 것입니다. 잘 다녀오라는, 같이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달리 표현할 방안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빠는 일 하다가도, 퇴근 후 빈 방에서라도 문득 아내와 딸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면 카카오톡 메세지를 나누며 허허로움을 달랬을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는 대답 없는 카카오톡을 보며 “내가 같이 같으면 어쩌면 그 허름한 여관에 묶지도 않았을테고, 불이 나도 살릴 수 있었을텐데...”라며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있을 테지요.

엄마는 엄마대로 집에 두고 온 아빠가 마음에 걸렸을 것입니다. 여행길에서 예쁜 풍광을 보아도 남편이 생각났을 테고, 두 딸과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추위에 고생하고 있을 남편 때문에 음식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겠지요.

이날 서울에 도착해 종로 뒷골목의 허름한 여관에 몸을 푼 것도 한 푼이라도 아껴 볼 심사였습니다. 아빠의 수고를 생각하면 남들 다 가는 호텔급은 언감생심이고, 말끔한 모텔도 이들에게는 사치였겠지요.

하룻밤 숙박료가 웬만한 모텔의 절반 값에도 못 미치는 종로 뒷골목의 여관이었지만 이들 세 모녀에게는 그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오히려 돈을 아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모녀를 둘러싼 세상에서는 이명박과 그 아내, 그의 형이 국정원의 특수 활동비 수십억원을 받았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던 날입니다. 세 모녀도 그 뉴스를 보았을 것입니다. 더럽고 치사한 권력이지만 세 모녀는 여행의 설레임으로 그 더러움을 넘겼을지도 모릅니다.

두 딸은 어쩌면 어머니를 가운데 놓고 양쪽에 누어 잠을 잤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뉴스에 그런 것은 나오지 않더군요.중학생인 큰 딸 이모양은 사고가 난 날밤에도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이 밤  늦도록 같은 반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겨울여행의 즐거움과 설레임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특히 낼부터 구경하게 될 서울 여행으로 들떠 있었겠지요. 롯데 월드도 가보고 싶었을 테고, 맛집 검색도 해 두었겠지요.

큰 딸은 새벽 2시37분 반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카카오톡 문자를 보낸 뒤 잠이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30분 뒤 이양과 엄마, 동생이 머물던 방에 화마가 덮쳤습니다.

세 모녀가 함께 떠난 첫 여행은 그렇게 마지막 여행이 됐습니다.

고향에 남겨진 가난한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여행길에 나서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는데 세 모녀는 서울에서의 첫날밤에 무슨 꿈을 꾸었을까요. 혹시 현실에서는 빠졌던 아빠와 함께 네 식구가 함께 여행하는 꿈을 꾸었을지도 모릅니다.

부패한 권력자들은 저리도 뻔뻔한 얼굴로 잘만 사는데, 가난한 이들은 여관 숙박비 몇 푼을 아끼려던 것이 마지막 여행길이 되어야 하는가요.

운명이 있다면 서로 뒤바꿔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정의란 그런 것이 아닌가요.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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