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78] 미투는 바다에 부는 태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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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78] 미투는 바다에 부는 태풍이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8.03.08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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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권위는 권위로서 존중되고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권위가 계급이 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 또한 정당성을 잃을 경우 폭력이자 폭행의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영웅호색’이나 ‘허리 아래 인격’은 남성에 대한 모멸이자 수치일 뿐이다.”

  ‘미투’ 운동이 한국사회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권력으로 감춰지고, 권위로 감춰졌던 민낯은 추악하고 경악스럽다.

검찰에서 불기 시작한 미투는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면서 끝을 가늠키 어려운 형국이다.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을 드러내는 미투는 법조계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계와 학문의 전당인 대학, 대중의 우상인 연예계 할 것 없이 사회 곳곳에서 까발려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노 시인 고은과 유력 대선주자였던 안희정의 몰락은 충격적이다. 고은 시인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며 한국 시단의 거목이었다. 그는 자신의 시로 아름다움을 노래했고, 사회 부조리에는 추상같은 언로로 저항했었다. 그의 시는 인간과 삶에 대한 진솔한 언어로 감성을 자극했고 평화를 추구했다. 그는 대중의 사랑 속에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았던 사람이다.

안희정 또한 지난 대선에서 당내 후보로 문재인 후보와 1위 다툼을 벌일 만큼 유력주자였다. 차기 대권도 바라보는 차세대 젊은 정치인으로 주목을 받아왔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비서가 성폭행사실을 폭로한 날 오전에도 “우리는 오랜 기간 힘의 크기에 따라 계급을 결정짓는 남성중심의 권력 질서 속에서 살아왔다”며 “최근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은 인권실현의 마지막 과제로 우리 사회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고 까지 했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막연하나마 희망의 성장주였다.

하지만 고은이나 안희정의 이면은 겉과 달랐고 성적 폭력성은 오히려 더 했다. 권력과 권위로 여성을 학대했고, 여성에 대한 학대는 자신의 쾌락이었다. 고은의 시가 교과서에서 빠져야 하고, 안희정이 정계를 은퇴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학과 정치는 아름다움과 신뢰이고, 이들의 행위는 아름다움과 신뢰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꽃일수록 시들 때면 더 초라하고 추해지는 것처럼 권력이나 권위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러한 권력과 권위의 추락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변해야 한다. 변하고 적응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생태계의 법칙은 오랫동안 남성중심사회를 지배해온 우리사회가 받아들여야 할 절실하고 시급한 현안이다.

우리는 한 때 남성 중심적 성문화에 관대하는 것을 도량이 넓은 것으로 착각했다.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의 문제로 돌리기까지 했다.

‘영웅호색’이나 ‘허리 아래 인격’이라며 남성의 성적 폭력성을 영웅시하기까지 했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권력이나 권위로 소유할 수 있다는 남성우월의 계급의식이 낳은 산물이다. 그러면서도 여성의 성에 대해서는 완고하기 짝이 없었다. 권력자들의 부패와 무능으로 나라와 백성을 빼앗겨 놓고도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에게 ‘환향년’이라며 ‘더러운 죄인’취급했던 몰염치의 유전자가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남성에게 관대하고, 여성에겐 가혹한 이런 문화 속에서 여성은 피해자이면서도 죄지은 자가 됐고 남성은 가해자이면서도 ‘그럴 수도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음담패설이 유머나 유쾌함으로 둔갑하는 것도 우리만의 변태적 가학성이다.

이제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권력이나 권위는 언제든지 땅에 떨어지는 화려한 꽃일 뿐이다. 권위는 권위로서 존중되고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권위가 계급이 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 또한 정당성을 잃을 경우 폭력이자 폭행의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영웅호색’이나 ‘허리 아래 인격’은 남성에 대한 모멸이자 수치일 뿐이다.

권위와 권력으로 감춰져 온 민낯은 이번 기회를 통해 더 까발려져야 한다. 물론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도 없지 않다. 무고한 사람이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충분히 걸러지거나 자기정화되리라 믿는다.

차제에 권위의 계급 속에 감춰진 이면이 모두 드러나, 물러날 사람은 물러나고 사라질 사람은 사라져야 한다. 낡은 것은 물러나야 한다. 낡음은 낡음일 뿐이지 권위가 아니다. 권위의 공백은 새로운 권위의 탄생을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미투 운동이 지나고 나면 우리 사회는 한 차원 새롭게 발전 할 것이다. 60년대 대마초 파동이 끝나고 가요계의 절대강자들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가수들이 등장하여 한국가요를 발전시킨 것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태풍은 바다를 혼란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다를 본래의 기능으로 정화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투가 우리사회의 태풍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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