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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03] 3월, 무성의 함성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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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03] 3월, 무성의 함성을 키우자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9.02.27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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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3·1 독립만세의 함성은 민중이 무성으로 키운 자연의 함성이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정치개혁을 위한 함성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올 3월이, 올 봄이 우리 모두에게 준 역사적 책무다.'

내일이면 3월이다. 볼에 닿는 기운도 기운이지만, 산에 오르거나 들길에 나서면 골골에 스며든 봄의 체취를 확실히 만나게 된다. 논두렁에서는 흙 냄새가 피어나고 새순이 돋는 마른 가지에선 새들의 노래가 맑은 구슬이 돼 사방으로 튀긴다.

어디선가 듬성듬성 뻐꾸기 소리도 들린다. 이때쯤이면 모든 것이 새롭다. 이는 새롭게 피어나고 새롭게 흐르기 때문이다. 허균이 한정록(閑情錄)에 쓴 천지의 맑은 소리, 시인의 가슴을 울리는 소리의 대부분을 이때쯤에 만나게 된다.
허균은 소리의 운치에 대하여 논하는 자들이 하는 말이라며, 시냇물 흐르는 소리(溪聲), 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潤聲), 파도처럼 밀려드는 대숲의 바람소리(竹聲), 솔바람 소리(松聲), 산새소리(山禽聲), 깊은 골짜기의 은은한 울림(幽壑聲), 여름날 파초에 듣는 빗소리(芭蕉雨聲), 낙화성(落花聲), 낙엽성(落葉聲)을 천지의 맑은 소리, 시인의 가슴을 울리는 소리라고 했다.

꼭 시인 만이겠는가. 천지의 맑은 소리는 누구에게나 감동적이다. 3월은 그 감동이 시작되는 달이다. 칙칙한 겨울을 빠져나와 듣는 소리, 흐르는 소리, 그 소리의 감동은 겨울의 음산한 기운을 한꺼번에 벗겨낸다.

개나리 예보도 전해진다. 지금 제주에서부터 개나리의 노란 행렬이 북상하고 있다고 한다. 노란색은 전형적인 봄, 3월의 빛깔이다. 유채꽃도 그렇고, 옛 고향집 마당을 가로질러 종종걸음 치는 병아리들의 빛깔과 소리는 어떤가.

이런 소리와 빛깔은 계절이 변하면 그때마다 새롭게 변신하며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중국 명나라 후기의 서화가인 막시룡(莫是龍)이 이런 소망을 말했다. 내가 평소에는 그리 좋아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시냇가 버드나무 숲 그림자가 조그만 창문을 가리고 있는 정경을 볼 적마다 곧 그 아래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막시룡이 이런 꿈을 꾼 것은 초여름 어느날쯤 되었을까.

봄의 전령사인 3월의 소리와 빛깔 또한 세월 따라 변하다가 단풍으로 폭발하면서 낙엽으로 우수수 진다. 모든 계절의 빛깔과 소리는 낙엽에 이르러 바스락거리며 결국 땅으로 소리없이 스며든다.

이를 순리라고 하는 것이다. 자연의 순환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도 순리가 있다면, 순환의 이치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이처럼 세상이 시끄럽고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의 정치권을 보면 올 3월도 어느 때보다 시끄럽고 험난한 달이다. 집비우고 여·야의 바같 싸움은 지속될 전망이고 내년 총선국면에 돌입한 정치권은 표심을 잡기 위해 물 불 가리지 않는 더티한 호객행위를 하고 있으니 3월이고 봄이고 온전할 리 없다. 어쩌면 이 봄을 송두리째 잃을 수도 있다.

이런 때 일수록 모두들 마음속에 막시룡의 집을 한 채씩 지어 봄직도 하다. 그 안에 들어앉아 천지의 맑은 소리에 마음을 담가두고, 사람마다 돌아가는 세상을 짚어보며 가슴 깊은 곳에 무성의 함성을 키웠으면 한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그의 명저 군중과 권력에서 민중의 함성은 무성으로 시작한다면서 자연발생적이어서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군중의 함성은 헛갈릴리 없는 진짜이며 그 효과도 엄청나다고 했다.

허균은 저런 많은 감동의 소리 보다 참으로 심금을 울리는 소리는 매화성(賣花聲)으로 으뜸을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문제는 외면한 채 소리가 어쩌니 저쩌니 하며 뜬구름속에서 노닥거리는 선비들을 비웃었는데, 그도 현실의 모순을 질타하는 민중의 함성을 기대하며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꿈틀거리는 3월, 우리는 민중이 역사에 울린 감동의 소리를 듣고 있다. 3·1 독립만세의 함성은 민중이 무성으로 키운 자연의 함성이었다. 봄에는 4·19의 함성도 함께 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정치개혁을 위한 함성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올 3월이, 올 봄이 우리 모두에게 준 역사적 책무다. 그래서 3월은 계곡물이 어름에서 깨어나 새롭게 흐르듯 새로운 정치의 흐름을 잡기 위한 준비에 모두 나서야 할때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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