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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07] 애증의 금호, 다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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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07] 애증의 금호, 다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9.04.24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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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글로벌 시대에 기업의 지역 연고성이 무슨 대수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지만 금호의 몰락은 호남인에게 당분간 상실감으로 남을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팔기로 했다는 소식은 호남인들에게 10여일이 되어가도록 착잡함으로 작용하고 있다.

내 일처럼 슬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의 일처럼 무관심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애증의 경계선에 서서 안타까움으로 지켜보고 있다. 경제계 지도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동안 호남의 상징이었다.

‘금호’라는 애칭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고 박인천 창업주가 지난 1946년 중고 택시 2대로 광주택시를 설립한 것이 모태가 됐다. 2년 뒤 1948년에는 현 금호고속의 전신인 광주여객자동차를 창업, 금호고속의 탄생을 알렸다. 금호택시와 고속버스 사업은 어려운 시절 지역민의 호주머니속 차비로 성장을 거듭했다.

호남인들의 쌈짓돈이 금호의 기반이 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전국 어느 낯선 곳, 서먹서먹한 타향에 내리더라도 낯설지 않는 ‘금호고속’이라는 이름은 친근함으로 함께 했고, 함께함은 말없는 위로가 됐다. 이러한 호남인의 애정에 힘입어 금호는 1988년 아시아나항공을 취항했고 이후 건설분야와 항공, 육상운송, 레저, IT사업부문 등 사업군을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다.

그 사이에 금호고속은 국내 고속버스 시장 점유율 1위로 우뚝 섰고, 아시아나항공은 세계적인 항공사로 성장했다. 특히 2006년 대우건설과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고 당시 그룹 자산 규모 26조원으로 재계 순위 7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는 ‘승자의 저주’가 됐고, 오늘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해체되는 시발점이 됐다. 충분한 자금 없이 무리하게 추진한 이들의 인수로 차입금 규모가 급격히 늘어났고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닥치면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되팔았지만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2009년에는 그룹 경영권을 산업은행에 내주었는가 하면 설상가상으로 2015년에는 ‘형제의 난’까지 발생, 금호석유화학과 결별을 불러왔다. 이제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아시아나가 떨어져 나가면 금호만 남게 되고, 금호는 재계서열 7위에서 60위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신분이 바뀐다는 의미다. 지역민들은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금호’를 위해 목 놓아 울어줄 수만은 없다. 그러기에는 ‘금호’가 재계의 호남을 상징했지만 상징 그 이상의 각별함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남 상징’이 화려한 빛이었다면 빛의 뒤에는 서운함의 그림자도 있었다.

광천터미널 땅 매입과 신세계광주점 임대사업, 예술인들을 위해 운영하던 금호문화원 운영포기, 광주월드컵 경기장 부정입찰 등은 호남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그림자임에 분명하다. 금호의 아시아나항공 취항도 5·18 이후 호남민의 정서를 달래기 위한 군사정권의 정략적 결정으로 탄생했다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 당시에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호남인이 보여준 애정에 대한 금호의 정서적 접근에 따뜻한 체온이 실리지 않았다는 것이 금호를 바라보는 애증의 근원이다. 금호는 ‘궁핍한 집안의 출세한 장남’같은 호남의 기업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금호는 명절 때 한 두 번 고향땅의 늙은 부모를 찾아보는 것으로 장남의 역할을 할 만큼 했다고 여기는 그런 아들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찌 보면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금호를 보는 호남인의 마음이기에 안타깝기는 하지만 소리 내어 울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금호보다 먼저, 금호보다 더 많은 사랑 속에 성장하다 지금은 이름조차 추억이 되어버린 ‘해태그룹’이 호남에 있었다.

해태제과를 기반으로 했던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는 그 뜨거운 사랑의 절정이었다. ‘기아 타이거즈’로 바뀌어 변함없는 애정을 받고 있으나 옛사랑의 추억은 애달프다. 이제는 또 다른 사랑의 이름이었던 금호가 애증의 추억 사진첩으로 들어가고 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마지막 대기업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글로벌 시대에 기업의 지역 연고성이 무슨 대수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지만 금호의 몰락은 호남인에게 당분간 상실감으로 남을 것이다. 비록 대기업의 이름에서는 사라졌지만 금호가 새롭게 태어나 기업 본연의 역할로 다시 사랑받는 기업이 되길 바란다. 이순신 장군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었다. 금호에는 아직 고속버스가 있지 않는가?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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